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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몰락한 귀족으로 살아남는 방법

211화 "목숨의 저울" - 리뷰 만물상

by 리뷰 만물상 202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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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온몸이 무언가로 꽁꽁 싸매어져 있기도 했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독한 진통제와 진정제를 사용해서인지 몰라도 솔직히 목 아래로는 지금 감각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내 상태에 대해 정확히 몰랐지만, 사냥하는 뱀 길드장에게 들은 현재 내 몸 상태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좋지 않았다.

일단 앞서 얘기 했던 것 처럼 내 몸에 외상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터지다 못해 짓이겨진 손바닥과 손아귀 근육이 파열된 것을 제외하면 자잘한 생채기들이 전부였다.

문제는 바로 마지막 숨결의 부작용이었다. 원래 마지막 숨결은 부작용이 위험하고는 하지만 나름 탁월한 효과 때문에 용병 중에서는 찾는 이가 종종 있다.

다만, 해독제의 재료가 원체 희귀한 독이라 가격이 엄청나다 보니 쉽사리 아무나 구매하지 못했고, 혹시 사더라도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봐야 했다.

어쨌든 그렇게 가능만 하다면 대부분 여벌 목숨쯤 생각해 가지고 다니고 싶어 할 만큼 마지막 숨결의 위험성은 전란의 시대에 사용했던 초기형에 비해 많이 희석되었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의 인식에서 마지막 숨결의 부작용에 대한 인식이 많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엄청나게 비싼 해독제 덕분이다.

이야기가 겉돌았는데 솔직히 정상적인 용법 내에서 사용한다면 하루 이틀, 조금 길면 일주일만 정양한다면 마지막 숨결의 부작용을 털고 일어나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는 정상적인 용법에서 벗어나도 너무 많이 벗어나 버린 게 문제였다. 솔직히 마지막 숨결의 독성은 해독제로 인해 많이 몰아내졌지만 내 몸엔 현재 그 이상의 부작용이 남아있었다.

바로 오랜 시간 과도하게 폭주한 감각 기관들 때문에 감각을 전달하는 신경계에 오류가 생긴 것이다. 보통의 상처는 치료하고 봉합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번 파열되거나 고장 난 신경계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앞서 내 시야가 빙글빙글 돌던 것도 마지막 숨결의 독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지금 온몸의 감각기관이 고장 나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지금 내 신체는 어떠한 자극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모르는 상태고 그 잘못 받아들여진 신호로 인해 쇼크가 올지 모르기에 최대한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게끔 여러 가지 완충재로 몸을 둘둘 감아놓은 것이라 했다.

“신경계가 문제라면 저 또한 오파츠로 소용 없는 것 아닌가요?”

“오파츠로는 네 신경계를 치료하려는 게 아니야. 외상을 치료하려는 거지.”

“외상은 시간이 지나면 낫습니다. 굳이 오파츠까지 써가며 외상을 치료할 이유가... 신경계를 치료할 다른 방법이 있나 보군요.”

“맞아, 치료사가 영 돌팔이 같아서 믿음은 가지 않지만 4할, 지금 치료를 시작하면 네 신경계가 고쳐질 확률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확률은 더 떨어질 테고.”

“...어쨌든 이건 그럼 제 동료에게 사용하고...”

“문제는 그뿐이 아니야. 9할, 외상을 치료하지 않고 지금 바로 그 치료를 시작하면 네가 쇼크로 죽을 확률이 9할이야. 그나마 이 오파츠로 네 외상이라도 치료해야 죽을 확률이 6할로 줄어들어.”

내가 의식이 없는 사이 이들이 고민한 이유는 위의 대화와 같았다. 오파츠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셀시가 살아날 수 있을지는 아예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오파츠를 나한테 사용한다면 확실히 내가 살아날 확률이 눈에 띄게 커지기에 고민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알프에게 빨리 선택하라 재촉했지만 알프로서도 나와 셀시의 목숨을 두고 저울질하기 쉽지 않기에 섣불리 결정을 못 하고 있던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파츠는 제 동료에게 사용해 주세요.”

“진심이야?”

“네, 저는 어찌 되었든 살아날 확률이 있지만 사경을 헤매고 있는 동료는 아예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네게...”

“알프, 오파츠를 셀시에게 사용해줘.”

“...이번엔 정말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알프, 제발 부탁할게.”

“...절대 죽지 마십시오.”

“야, 너 진짜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 맞지? 너 이미 한번 치료 시도했다 죽을뻔했어.”

“괜찮습니다. 동료에게 오파츠가 사용되는 걸 확인하고 바로 제 치료도 시작하죠.”

나는 잠시간 고민했다. 솔직한 말로 애초에 고민할 거리도 안 되었다. 사람의 목숨에 경중은 없다. 그저 조금이라도 살아날 확률이 높은 환자를 먼저 치료하는 게 맞는 이치다.

이것은 나와 셀시의 입장이 반대라 하더라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 살아남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오파츠를 사용하지 않아도 살아날 확률이란 게 존재했다. 하지만 셀시는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와중에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내 사람들을 지키기로 한 나는, 적어도 내 사람을 그렇게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를 위한 이타, 내 본성만큼이나 내 의지는 확고했다.

사냥하는 뱀 길드장에게 내 의사를 밝히자 그는 계속해서 나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설득에 굴하지 않았다.

알프마저 나를 걱정하며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여태껏 나를 봐왔고 내 성향이 어떤지 한번 결심한 내 의지가, 고집이 얼마나 강한지 아는 알프는 더 이상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솔직히 나라고 겁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그러했고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그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은 이미 내게 각인되어있었다.

맞다, 치료사가 확언했다는 내 치료법은 바로 처음 내게 행해졌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일이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게 무슨 치료법이냐 하겠냐마는 알고 보면 그만큼 확실한 방법 또한 없었다.

애초에 내 몸 상태는 마지막 숨결에 의한 잔류 독성과 감각기관의 고장이다. 그렇다 보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혈류를 증가시켜 해독제를 보다 빨리 활성화해 잔류 독성을 빨리 밀어내는 게 그 첫 번째 효과다.

그리고 두 번째는 본디 사람의 몸은 원형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상처가 낫는 것이고, 그렇기에 태어났던 흙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엉망진창이 된 감각 회로 시간이 흐르면 도 언젠간 제자리를 찾아 정상이 되기 마련이다. 다만, 그 자리를 찾는데 오래 걸릴 뿐이다.

다만, 검이나 장비 또한 사용하지 않고 오래되면 녹이 슬고 망가지듯이 감각기관 또한 그러하다, 회복이 길어질수록 엉망진창 고장 난 감각기관 또한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것이다.

그사이 녹이 슬고 망가지며 나중엔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각기관을 빠르게 돌리기 위해서는 감각기관에 연결된 신경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적절한 자극을 주어야 한다.

치료사의 치료법도 그러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온몸의 감각기관을 자극함으로써 파열되고 망가진 감각기관이 정상 작동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치료법은 아니고 치료사의 오래된 경험을 토대로 한 민간요법에 가깝지만 지금으로써는 가장 효과적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 감각기관들이 폭주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 뿐만 아니라 해독제가 완벽히 돌지 않아 마지막 숨결의 효과 또한 남아있어 단순히 뜨거운 물이라 하더라도 엄청난 자극과 통증이 몰려올 터였다.

그렇다 보니 가뜩이나 감각기관이 고장 나 개복치 상태인데 증폭된 자극들까지 범람할 것이고 가볍게는 쇼크로 혼절하고 심하면 그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단점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르륵, 그르륵, 그르륵, 그르륵’

“정말 이걸 이 아이에게 사용할 거요?”

“네.”

“결과에 대해서는 나는 장담 못하오.”

“알겠습니다.”

결정을 했으면 한시라도 행동은 빨라야 했다. 나나 셀시나 그만큼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들것에 실려 셀시의 방으로 이동했다.

가뜩이나 내게 행해지는 치료가 보통의 치료가 아닌 만큼 안정이 필요하다 했지만, 셀시에게 치료가 정상적으로 시행되고 셀시의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받겠다 고집부린 결과였다.

눈은 가려져 보지는 못했지만, 방에 들어서자 들려오는 소리는 셀시의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르륵 거리는 숨소리는 장기와 폐에 이미 피가 고인 것이 확실해 보였다.

방안에는 나와 알프, 강철 전사 길드장과 치료사 그리고 셀시만이 남아있었다. 강철 전사 길드장에게 오파츠를 건네받은 치료사는 다시 한번 내게 의사를 물었지만 내 의지는 확고했다.

‘파사삭’

‘사하아아아아’

치료사가 마지막으로 내게 의사를 물은 뒤에도 내 대답이 변치 않자 치료사는 마지못해 오파츠를 가지고 셀시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셀시에게 다가간 치료사가 손안에 쥔 오파츠를 주먹으로 강하게 쥐자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셀시의 몸에 그 부순 가루들을 뿌리기 시작했다.

치료사의 손에서 붉은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던 가루들은 치료사의 손끝에서 셀시에게 떨어져 내림과 동시에 치료를 위해 주요 부위만 가려둔 상태의 셀시의 몸에 닿자 그대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확실히 공산품이라 하나 고대에 제작된 오파츠 값은 하는 듯 가시적인 효과는 빠르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치료를 위해 한창때인 여인을 헐벗겨 놓기는 했지만, 솔직히 지금 셀시의 상태를 보고 욕정 하는 이는 없을 것이었다.

그간 셀시가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과거 센티움에서 치료사가 안정을 취하랬음에도 무리했던 셀시의 몸은 게글러와 전투 때 생긴 상처들조차 아직 다 낫지 않은 상태였다.

게글러들이 손바닥 한 뼘도 되지 않는 단검들을 휘둘렀다고는 하나 몸 이곳저곳에 크고 작은 생채기들이 많이 생겨있었고 훈련으로 인해 무리하는 덕분에 회복이 더뎌 일부는 나았지만, 아직 대부분 딱쟁이도 떨어지지 않았다.

또한 얼굴만큼 뽀얀 피부를 가졌을 복부에는 절반 이상이 조직이 괴사하진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시퍼렇다 못해 검은색에 가까운 멍이 들어있었다.

멍의 원인은 마족이 기생한 스락톨에게 단 한방 허용한 것으로 인해 외부의 충격이 내 출혈까지 이어지며 만들었고, 거기다 더해 부러지며 장기를 꿰뚫은 갈빗대를 강제로 접골하느라 부상이 악화된 것도 있었다.

물론, 현재의 부상을 고려하지 않은 강제적인 접골이긴 했으나 노련한 치료사의 그 치료가 아니었다면 지금 셀시는 이미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어쨌든 오파츠의 효과가 찾아온 첫 번째 변화는 셀시의 생채기들이 치료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생긴 상흔들이 지워지기 시작했고 몸을 혹사시킨 덕에 아직 낫지 않은 고름과 진물이 찬 상처들 또한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부와 팔의 멍 또한 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아직 몸통의 절반이 넘게 멍이 들어있는 것은 여전했지만 검은색에 가까운 멍이 보기에도 차이가 날 정도로 보라색 정도로 연해졌다.

그리고 뒤이어 장기에 고인 피 때문에 연신 그르륵 거리던 셀시의 호흡 또한 조금 안정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끓는 소리를 내긴 했지만, 호흡이 한정 안정된 듯 표정 또한 편해졌고 끓는 소리 또한 작아지고 빈도도 줄었다.

“셀시의 상태는 어떤가요?”

“다행이군, 생각보다 오파츠의 효과가 좋아.”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지켜봐야지, 겉보기에 나아졌다고 속까지 나아졌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래도 내 경험에 비춰보자면 아직 젊기도 하니 적어도 살아날 가능성이 생긴 것은 확실해.”

비록 나는 셀시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오파츠를 통해 급격히 상태가 호전되는 셀시를 본 주변 사람들의 탄성과 셀시의 호흡이 비교적 고르게 변하는 것을 들어 알 수 있었다.

치료사에게 셀시의 상태를 묻자 치료사는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오파츠가 물건은 물건인 듯 좀 전까지만 해도 셀시를 살아있는 시체 취급하던 치료사의 태도 또한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뭘 했다고 나한테 고마워야 할 일이 아니지.”

“강철 전사 길드장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잊으면 안 되지. 절대 잊지 말고 자네도 치료 잘 받고 꼭 갚으라고!”

나는 다시 한번 치료사와 강철 전사 길드장에게 감사를 전했고, 치료사는 환자의 안정을 위해 모두 나가라 하였고, 우리가 나온 뒤 셀시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 후 본인도 나왔다.

오파츠 덕분에 정말 위급했던 셀시는 다행히도 한고비 넘길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치료사의 치료와 아직 젊고 혈기 왕성할 나이인 셀시의 회복력을 믿고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나의 치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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