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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몰락한 귀족으로 살아남는 방법

58화 "모두와 함께" - 리뷰 만물상

by 리뷰 만물상 2023.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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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사람들 앞에서 무겁게 입을 뗐다. 평소 말할 때 조금 가벼운 투로 말하기에 지금의 보기 드물게 진중한 태도로 이어지는 내 말에 사람들 또한 조금 긴장한듯했다.

나는 현 황제를 위협하는 독에 관하여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먼저 독살당한 선대 황제에 관한 이야기나 카렌의 정체, 그리고 그 모든 배후가 듀발 후작이라는 내용은 우선 빼두었다.

선대 황제 또한 독살되었다는 이야기와 덧붙여 그 모든 배후가 듀발 후작이란 이야기를 한다면 듀발 혼자 나라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고, 차후 언젠간 밝혀질 수도 있는 카렌의 정체와 그 이후의 입지 때문에라도 말할 수 없어 제외하였다.

처음에 내 입에서 현 황제를 위협하는 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내가 어디까지 얘기할지 카렌과 이야기를 나눈 상태가 아니었기에 카렌이 살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대부분의 이야기를 잘라내고 현 황제를 위협하는 독과 그랑 후작이 해독제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했다는 점만 이야기하자, 자신을 향한 배려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나에게만 보이게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현 황제를 위협하는 독에 관한 이야기는 나름 잘 마무리되었다. 혼란스러워하거나 겁먹지 않을까 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사람들은 그럭저럭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황제가 멀쩡히 있는데 듀발 후작이 황제의 직인을 남발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리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황제 상태가 정사를 돌볼 수 없는 상태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을 거라 생각하는듯했다.

이어서 나는 이번 마탑에 다녀오면서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모험담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기에 대부분의 이야기를 생략하고 핵심만 간추려서 이야기했다.

제몬드와의 조우, 마족의 등장, 마족을 이용하는 제사장, 그리고 흑마술과 마탑의 결사까지 어느 하나 가벼운 내용들이 없기에 이야기하는 내내 나와 같이 일을 겪은 알프를 제외하고는 시시각각 놀라움, 충격과 경악, 그리고 불안까지 다양한 반응의 표정을 지어 보여 줬다.

'짝'

"자, 여기까지가 내 이야기의 끝이야. 긴 이야기 끊지 않고 들어줘서 고마워. 다들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봐도 좋아."

"백작님, 혹 제몬드 라는 자가 그렇게 강했습니까?"

"셋"

"알프 경,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너와 내가 동시에 덤벼도 세 합 안에 진다. 아니 죽는다."

이야기가 끝나고도 이야기가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입을 여는 사람이 없이 적막했다. 언제나처럼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나는 박수와 함께 다시금 원래의 다소 가벼운 말투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으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무게감이 컸는지 한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않았다.

적막을 깨고 페드로가 조심스레 나에게 제몬드의 강함에 관해 물어왔다. 나는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던 찰나 다른 곳에서 대답이 나왔다. 대신 대답해준 사람은 알프였다 나는 제몬드의 강함을 솔직하게 느낀 대로 말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 낮춰서 이야기 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었다.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전의를 상실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낮춰 이야기하면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프는 이런 때 일수록 냉정하고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숫자를 말했다. 그러한 알프의 행동에 페드로가 알프에게 되물었다.

현재 이 안에서 가장 무력이 강한 자를 뽑으라면 단연 알프다, 페드로 또한 검의 길에 접어들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하나 지난 스위든 백작과의 영지전에서 보았듯이 알프는 이미 중위의 단계에 올라선 강자다. 그런 알프가 페드로에게 참혹한 현실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며 말했다.

"마족들은 모두다 그 제몬드라는 자 만큼 강한 건가요?"

"아니, 정확하진 않아도 모두가 그렇진 않을 거야 자신을 한 종의 왕이라 표현한 만큼 그자가 특별하게 강한 걸 거야. 하지만, 마왕의 시대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게 당했는지 기록을 비춰본다면 다른 마족들 또한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알프의 말을 들은 페드로는 다소 충격받은 얼굴로 말문을 닫았다. 새로운 경지에 오른 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생겼을 페드로지만 그러한 자존심이 단번에 무너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다시 적막이 흘렀고 이번에는 카렌이 적막을 깨고 다른 마족들 또한 그만큼 강한 무력을 지녔는지 물어왔고, 나는 솔직한 내 생각을 말해주었다.

그녀에게 말한 것 처럼 아마 제몬드는 마족 내에서도 특별하게 강한 존재였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모든 마족이 제몬드 만큼 강했다면 마족의 토벌은커녕 지금의 평화의 시대 따위는 없이 마왕의 시대만이 지속됬을 것이라 생각했다.

"백작님, 흑마술이라 하셨지요, 그것에 대한 정보는 더 없습니까?"

"불행히도 없어, 마탑에서도 흑마술에 관한 내용은 전부 금서고에 들어있고 거기는 마탑주 또한 드나들 수 없는 곳이라 마탑주도 자신의 스승한테 들은 게 전부랬어. 사자와 망자 그리고 영혼을 조롱하는 힘. 그것이 흑마술의 단서라 했어. 그리고 로델이 돌아온다면 아마 마탑 뿐 아니라 이 세계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뿐."

카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치자 이번엔 프레드릭이 흑마술에 관해 물어왔고, 나는 마탑주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었다. 과거 연구되었던 흑마술에 관한 자료는 모두 마탑의 금서고에 저장되어있으며, 물론 마탑주가 자신의 권한으로 보려고 한다면 볼 수야 있겠지만 자신이 흑마술의 자료를 본다는 것은 곧 다른 이들 또한 그 자료를 볼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기에 엄밀히 따진다면 보지 못하는 게 맞다 했다.

그렇기에 마탑주도 흑마술에 관해서는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이 전부이며 그저 사자와 망자 그리고 영혼 들을 조롱하는 힘. 이라는 설명이 전부였다 했다. 거기에 마탑주의 사견을 덧붙여 로델이 자신의 육체를 되찾고 부활한다면 그의 저주대로 마탑은 무너질 것이고, 퍼져나간 흑마술로 인해 세계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마족이 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아주 약간 희망을 찾았던 사람들은 다시금 흑마술의 위협에 대한 무거운 내용으로 인해 적막이 흘렀다. 

"그런데 백작, 인챈터는 언제 오는 건가?"

무거운 분위기 속 오랜 기간 적막만이 흘렀다. 어느 하나 가볍게 볼 사안이 없고,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가 싶은 내용들이었기에 다들 고민이 많은 듯 했다. 그런 적막을 끊은 것은 로날프였다. 마족이니, 독이니, 흑마술이니 다들 복잡한 사안들에 고민이 많을때 로날프가 뜬금없이 인챈터는 언제 오냐 물어왔다.

"아! 네 검은 망치 님 얘기 잘하셨어요 깜빡할 뻔했네요. 마탑에서 조만간 보내준다 했으니까 저와 알프가 이동한 시간을 계산해보면 대충 며칠 뒤면 도착할 거 같아요. 인챈터만 오면 이제 무구 제작에 들어가는 건가요?"

로날프의 엉뚱한 질문에 모두들 긴장감이 다소 풀어진 듯 해 보였다. 난쟁이들은 태어나 첫 100년간은 망치 한번 못 잡아보고 광부로 살다 100세가 되는 해에 첫 망치질을 시작한다 했다. 하물며 한 일족의 최고 야장의 수식어인 검은 망치를 얻기 위해 그가 망치를 휘두른 세월은 얼마인지 짐작도 하기 힘들 것이다. 

로날프의 나이는 정확히 모르지만 못해도 200년 가까운 삶을 살았을 연륜을 가진 난쟁이일 것이다. 그가 다소 성격은 괴팍해도 의외로 츤데레 같은 구석이 있어 아마 긴장감과 이야기가 주는 중압감에 억눌려 있을 이들을 위해 스스로 자처하여 바보스러운 질문을 했으리라 짐작했다.

"백작, 네가 영지를 버려두고 싸돌아다니는 동안 밑 작업은 다 해뒀다. 인챈터만 온다면 일주일 내로 시제품은 만질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 속의 회의는 나름 잘 마무리되었다. 나는 나의 사람들에게 그저 이야기만을 해주었다. 이들이 나를 믿어주듯이 나도 이들을 믿기에 내가 하나하나 이들에게 세세하게 무얼 지시하는 것 보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알아서 찾아서 할 것이라 믿었다.

회의 당일은 다들 자신의 숙소에서 두문불출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의 무게감에 짓눌릴 것을 걱정한 내 우려와는 달리 가신들은 아무도 불안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다음 날 부터 일상에 복귀하여 각자의 맡은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몇몇의 얼굴에 무언가 결의에 찬 표정이 드러나는 것을 보아 새로운 각오를 다진 듯 했다.

영지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갔다. 철저한 프레드릭의 성격 덕분에 세수하나 비는 것 없었고, 다른 영지와 다르게 배를 곯는 영지민들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얻은 것은 오롯이 자기 자신의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생기며 기대 이상의 효율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며칠 뒤, 내가 예상했던 대로 마탑의 방문자가 영지에 방문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아무래도 공식적인 파견이 아닌 비밀스럽게 파견되는지라 제국의 어디서라도 절대적으로 보호받는 마탑의 마차도 없이, 마탑의 깃발도 없이 그저 펑퍼 짐한 후드 달린 로브를 눌러쓴 사람이었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마탑에서 오신 인챈터분이 맞으십니까?"

"와, 이거 완전히 속았네요? 고위 귀족인 줄 알았는데 이런 벽지에 있는 영지일 줄이야... 이런 사람을 믿고 내 미래를 맡기 다니..."

인챈터로 보이는 사람은 경비병의 안내를 받아 내 집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혹시나 해 다시 한번 신원을 확인하고자 물었고, 그러자 후드를 벗으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긴 머리를 단정히 땋은 스타일을 고수하는 수도의 인챈터 아니 소니아였다.

나는 솔직히 마탑주가 소니아를 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영지가 벽지에 위치한 것도 그렇지만 마족이니 흑마술이니 여러 위험한 임무들을 수행해야 하는 입장으로써 이곳보다는 수도가 훨씬 안전하리라 판단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탑주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백작님, 이 여자는 누구죠? 누구길래 백작님께 미래를 논하는 거죠?"

나는 아차 싶었다 때마침 1기 교육생들의 교육상황 보고와 행정업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어 관련 서적 혹은 외부에서 가르칠만한 자를 초빙하는 것을 요청하러 카렌이 집무실에 들어있었고 간단하게 차를 마시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후드를 벗는 소니아를 보자마자부터 날이 선 눈빛으로 소니아를 흘겨보고 있었고 이어지는 소니아의 멘트에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마치 바람을 피운 남편에게 어서 해명하라는 듯 나에게 따지며 물었다.

"인챈터씨, 아니 소니아 오해할 만한 언사는 자제해 주시죠. 제가 소니아 때문에 마탑주님 앞에서 얼마나 곤란헀는지 알아요? 카렌 인사해 마탑에서 온 인챈터 소니아씨 야."

"꼬마 백작님이 먼저 못되게 구셔서 가벼운 장난좀 친 걸 가지고 뭘요 후훗."

나는 자칫하면 또 엄청난 오해로 인해 마탑에서처럼 곤욕을 치를 것 같아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카렌에게 그녀를 소개해 주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니아가 치고 들어오며 수도에서 내가 그녀를 도발(?) 한 것에 대한 복수로 그런 일을 벌였다며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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