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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몰락한 귀족으로 살아남는 방법

72화 "양동작전(?)" - 리뷰 만물상

by 리뷰 만물상 2023.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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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 제로스 우선 사람들에게 무기가 될만한 뭐라도 집어 들으라 해”

토벌군이 가까워져 오자 우리 쪽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일전의 화공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아직 나아지지 않은 상태인데다 또다시 생각지도 않았던 토벌군과의 전투에 지레 겁을 먹은 듯 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의 표정을 보면, 잔뜩 겁먹은 채 다들 도망칠까 말까 고민하는 듯 해 보였다.

나의 지시에 알프와 제로스가 서둘러 사람들의 동요를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한번 퍼진 공포는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고 있었다.

“모두 들으세요!! 많이 무서운 거 압니다. 도망치고 싶은 것도 압니다. 저도 매번 전장과 전투에 나설 때마다 두렵습니다. 부상의 고통도 무섭고, 불구가 될까 두렵습니다. 나아가 목숨을 잃는 것 또한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겁쟁이인 제가 아직도 살아 이 자리에 설 수 있던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무서워도 움직여야 하고, 불구가 된다 해도 움직여야 삽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모두 살아남읍시다! 무기가 될만한 거라면 뭐든 좋으니 집어 들고 대열을 갖추세요. 수는 우리가 더 많습니다!!”

어수선한 가운데 나의 외침에 주의가 집중되었다. 아무래도 항상 앞서 행동하며 제로스나 그 부하들도 내 말을 따르는 것을 보았기에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들 또한 나를 암묵적으로 리더로 의식하고 있던 듯 했다.

그렇게 주의가 집중되자 나는 진심을 토로하며 이들의 공포를 잠재우려 애썼다. 영지를 하사받아 울부짖는 숲에 터를 잡은 이후 크고 작은 전쟁과 전투 상황을 참으로도 많이 겪었다. 아무리 내가 인생 경험이 많다곤 하나 나는 그렇게 대단하고 대범한 인물은 아니기에 항상 두려움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를 믿고 따르는 이들 앞에서 두려움을 내색할 수 없었기에 당당한 자세를 유지했지만, 그 속 안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그런데도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 준 것 또한 그러한 두려움이다. 내 사람들을 잃는 것, 내 백성들을 잃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두려웠기에 더 신중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그렇게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었다.

나는 두려움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두려움을 안고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생존의 원동력이라 생각했다. 진심을 담아 전하는 내 말에 사람들은 어느덧 조금씩 동요가 줄어들더니 자신들이 매고 온 짐 안에서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느 사람들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러 보기도 했고, 호미, 냄비 낫 등 무기가 될만한 것이라면 되는대로 꺼내 쥐기 시작했다.

“모두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살아서 돌아갑시다!! 다들 짐을 모두 모아 전방에 쌓아주세요!”

나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믿고 따라주는 이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이들 또한 그냥 두고 자신 한 몸만 내뺐어도 될 텐데 자신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힘써주는 우리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잠시간의 감사 인사를 마친 뒤 나는 사람들에게 매고 온 등짐을 앞에 쌓게끔 지시했다. 수는 우리가 많다 하나 우리에겐 싸움을 할 줄 아는 자도 적었고, 제대로 된 무장을 한 사람 또한 적었다. 

이런 상황에서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적이 제대로 된 진형을 갖추지 못하게 해야만 했다. 300명의 인원이 보통 한사람당 하나 이상의 등짐들을 짊어지고 이곳까지 왔었기에 급조되긴 했어도 어느덧 순식간에 나름 쓸만한 방벽을 쌓을 수 있었다.

방벽의 모양새는 우리 쪽으로 완만한 곡선을 지닌 형태로 가운데만 조금 통로를 두어 토벌군이 한 번에 진입하기 곤란한 형태로 배치하였다.

물론 아무리 등짐의 숫자가 많다고 하나 등짐 자체의 부피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넓은 지역을 아우를 수 없어 그 높이는 보통 성인의 어깨 정도 수준에 불과했지만, 적의 진형을 막는 효과로는 충분했다.

“모두 집중해주세요! 토벌군 한명당 세 명이 함께 맞서세요, 자신이 공격당하면 맞서지 말고 바로 뒤로 물러나고 다른 둘이 공격하도록 하세요!”

비록 저마다 무기로 쓸만한 것을 하나씩 꼬나쥐긴 했지만 아직도 겁에 질려있는 사람들에게 싸우는 방법을 일러주기 시작했다. 3인 1조, 이는 훈련이 되지 않은 이들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전법이었다.

원래는 전방에 방패병을 세우고 창병 혹은 검수를 둘을 두어 방패병이 공격을 막으면 좌우의 검수와 창수가 적의 빈틈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제대로 된 진법훈련이나 정규 군사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을 전투에 동원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비록 방패병이 없어 한사람이 미끼가 되다시피 공격을 피하며 만들어진 빈틈을 공격하는 다소 위험할 수 있는 방식이지만, 지금에 있어서 우리에게 그리 많은 선택지는 없었다.

내 지시에 의해 사람들은 조금 우왕좌왕하는 듯했으나 모두 다급한 상황인 줄 알기에 안면 있는 사람들끼리 셋씩 모여 조를 짜기 시작했다.

“방호벽 정면은 알프와 제로스, 그리고 제로스의 부하들이 책임져 주세요. 절대로 사수해야 하는 공간입니다. 저는 중앙에서 지휘와 쇠뇌로 지원을 맡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중앙을 백업해주시고, 방호벽 좌우로 돌아오는 적들을 막아주세요!”

어느덧 모두 조를 거의 다 편성한 듯 해 보이자 나는 작전을 하달했다. 작전은 간결했지만,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인원의 배치를 마치고 전방을 바라보자 미친 듯이 달려오는 토벌군을 볼 수 있었다.

다가오는 토벌군의 수는 생각보다 적어 보였기에 나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토벌군 쪽이 월등히 많았기에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토벌군들은 지금 독기가 잔뜩 오른 채 진형도 갖추지 않고 그저 우리를 향해 뛰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당히 우리를 토벌하겠다 선포하고서는 지금껏 우리의 꽁무니를 쫒으며 당하기만 한 이들은 정말 독기가 오르다 못해 이성이 날아간 부대처럼 보였다. 나는 이들이 지금 그대로 무작정 돌진해오기를 바랐다.

“전군 완보!! 대열을 갖춰라!!!!”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상황은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토벌군의 뒤쪽에서 지휘관의 외침이 들려왔다. 무작정 달리는 것 처럼 보였지만 지휘관만큼은 방심하지 않고 정신을 다잡고 있었던 듯해 보였다.

우리에겐 잘된 일이나, 토벌군에게는 악재인 점은. 현재 토벌군을 이끄는 누리안 남작은 도시의 관리 가문으로 부임하기 전에도 그저 지방의 말단 행정관 출신으로 작은 영지전 몇번을 제외하면 전쟁 경험도 적고 직접 부대를 지휘한 횟수도 손에 꼽는다.

대부분 부관을 시켜 부대를 운영했던 누리안 남작의 곁에는 현재 그 부관이 없는 상태였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이라면 모를까 돌격 명령과 함께 과도한 흥분상태로 날뛰는 병사들이 평소 자신을 지휘하지 않았던 누리안 남작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누리안 남작의 지휘는 허망하게도 자신 주변에 있는 서른 남짓한 인원만이 간신히 전달되었고, 나머지 병사들은 통제 불능 상태로 그저 돌진을 지속할 뿐이었다.

“어?! 뒤... 뒤에서도 누가 다가옵니다!!”

전방에서 다가오는 토벌군의 숫자가 생각보다 적기에 혹시 양동작전인가 싶어 후방에 대기시켜놓은 우리 쪽 사람들에게서 외침이 들려왔다. 외침의 내용과 같이 우리의 뒤쪽에서도 거의 일백에 가까워 보이는 무리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뒤쪽에서 다가오는 먼지구름을 보며 나는 입술을 씹었다. 전방의 토벌군이 숫자가 적기에 아니길 바랐지만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진 듯 해 보였다.

전방에 모든 걸 집중한 지금 우리는 상대적으로 후방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후방에 위치한 병력은 병력이라 부르기 어려운 사람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전방에서 다가오는 누리안 남작에게 내심 감탄을 느꼈다, 처음에는 속으로 비웃으며 다행이라 안도했지만 이런 양동작전이라면 전방에서 미친 듯이 달려드는 병력이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제로스!!! 우릴세!!! 이 양반아 우리도 준비할 시간을 줘야지 그렇게 가버리면 어쩌나!!”

그렇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나 전방과 후방을 번갈아 보며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는 그때, 뒤쪽에서 오던 무리의 선두에 선 자가 우리를 향해 아니 제로스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속력을 높이고 있었다.

전방에 레이크 우드에서 내려오던 토벌군은 속도는 빨랐지만 거리가 있다 보니 아직 도착하기 전이었고, 상대적으로 후방의 평원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인원들의 거리가 훨씬 가까웠기에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접근하는 무리는 나름 창과 검 그리고 방패 등 병장기를 들고 있긴 했으나 그것이 정식 훈련을 받은 부대라고 보기에는 편제도, 통일성도 없는 제각각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뒤쪽의 무리가 언급한 제로스를 바라보았다.

“론도? 벡스?”
“제로스 아는 사람들입니까?”

“네, 저희 구역 인근에서 활동하는 패거리들입니다. 사람들 빼내오는 것 좀 도와달라 했더니 위험한 일엔 안 낀다 하던 녀석들인데 저들이 대체 왜...”

바라본 제로스는 미간을 좁히며 그들의 면면을 살폈고 아는 얼굴들이 있는지 몇몇 이름을 언급했다. 나는 그런 제로스에게 아는 이들인지 물었다. 점점 다가오는 그들을 보며 제로스는 저들이 누군지 알려 주었다.

“제로스 이 양반아, 늙었으면 남은 삶을 좀 편하게 살지 또 이런 일을 벌이나?!”
“허허허, 론도 말을 막 하는 거 보니 네녀석 턱뼈가 단단히 굳었나 보군, 다시 한번 박살을 내 줄까?”

어느새 다가와 우리에게 합류한 그들은 오자마자 제로스에게 농담 섞인 말을 내뱉었고 제로스 또한 그들과 사이가 막역한지 론도라 불린 자에게 농담을 건네었다.

하지만 론도는 제로스의 농담이 농담만은 아니었는지 잽싸게 자기 턱을 부여잡으며 말을 멈추었다. 아마 실제로도 제로스한테 까불다 몇 번 턱이 부서진 적이 있는 듯 했다.

“제로스, 이런 일 있으면 우리를 불러달라 했잖아. 맨날 저 잘났다고 혼자 멋진 척 다해먹는구만 퉤.”
“벡스, 내가 반말하지 말라 그랬을 텐데, 저번에 반말하면 어떻게 한다고 그랬더라? 아! 혀를 뽑아준다 그랬구만 하하하.”

자기 턱을 틀어쥐며 입을 다문 론도를 뒤로하고 벡스가 제로스에게 반말을 하며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벡스라 불린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아 보이는 자로 많이 쳐줘 봐야 20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자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반말을 들은 제로스는 웃는 얼굴로 벡스를 겁박했고 벡스 또한 자기 입을 가린 채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웠다.

“자네들 위험한 일에는 끼기 싫다더니 이곳엔 무슨 일인가.”
“그야 제로스...씨가 혼자만 이렇게 영웅 행세하려 하니까 우리도 도우려고 왔지... 요.”

“저, 서로 반가우신 것은 알겠지만 인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이제 토벌군이 코앞입니다. 우선 얼마나 오신 겁니까?”
“어린놈이 어딜 어른들 얘기하는데 끼어들...히끅!”

제로스는 론도와 벡스에게 오지 않을 것 처럼 이야기하더니 왜 왔는지 물었고, 론도는 여전히 턱을 가린 채였기에 벡스가 나서 반말 같은 존댓말로 대답하였다. 그렇게 이들이 얘기하는 도중 토벌군이 이제 정말 근접했기에 나는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며 같이 온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벡스는 그런 나를 흘겨본 채 비아냥거리며 대답하였지만, 제로스의 주먹이 올라가는 모습과 내 뒤에선 알프가 쏟아내는 살기에 화들짝 놀라며 딸꾹질하였다.

“저와 론도가 각각 서른명쯤 됩니다.”
“그럼 벡스 좌측을 맡아 방벽 옆으로 돌아오는 적들을 막아주십시오. 론도는 우측을 맡아주세요.”

살기에 짓눌린 벡스는 눈치를 보다 내가 이곳의 실질적인 지휘자인 것을 확인하고는 재빠르게 태도를 바꾸어 존대를 해왔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이들의 인원이 많았고 제대로 훈련받진 않았으나 도적질하며 무기깨나 휘둘러 보았음을 알기에 나는 이들에게 세세하게 지시하는 대신 각각 좌우를 맡아달라 이야기했다.

그렇게 생각지 못한 원군(?) 덕분에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김을 느꼈다. 비록 싸울 줄 아는 사람의 숫자가 비슷해졌다고는 하나 수비대와 산적의 무력은 엄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젠 이들을 믿는 수 밖에는 없었다.

“와아아아아아!!! 평원의 악마들이다 다 죽여버려라!!!”

나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토벌군을 경계하며 전방을 바라보았고 어느덧 토벌군은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까지 방호벽에 근접했다. 토벌군은 우리를 평원의 악마라 부르며 방호벽 사이에 뚫린 사람 서넛 지나갈 정도의 통로를 통해 정신없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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