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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몰락한 귀족으로 살아남는 방법

197화 "작전 회의" - 리뷰 만물상

by 리뷰 만물상 202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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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길드를 이끄는 길드장도 우리와 같은 특급 용병이긴 하지만 황금패 용병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과 실제로도 더 강한 영향력을 지녔기에 우리가 나서서 저들을 중재해 주기를 바란 것이다.

제국 용병 협회에서도 이번 제국의 압박이 의외였는지 대비가 부족한 듯 보였다. 급하게 수소문해 여러 길드를 통합해 대규모 병력을 꾸리긴 했는데 딱히 머리라 할 사람을 지정하지 못한 듯 보였다.

원래 이런 대규모 병력을 일으킬 때 병력의 수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머리의 유무이다. 아무리 잘난 병력을 모아놓아도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하물며 같은 용병들이라 하나 서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경쟁하는 사이이다 보니 사이가 좋을 턱이 없었고, 그런 자들을 한데 모아 놓으니 이런 일이 벌어진 듯 보였다.

‘쾅!’

“안녕하십니까. 특급 용병이자 황금패 용병인 데일 론도입니다.”

서로 치고받고 욕하고 던지고 하느라 우리가 들어온 줄도 모르는, 아니 관심도 없는 이들을 가로질러 나는 자연스레 비워져 있는 상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상석에 앉은 나는 이들의 행태를 조금 더 지켜보다 책상을 크게 내려치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와 동시에 내가 누구인지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지 소개하며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이리저리 험지에서 구르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용병들이라고는 하나 나는 아랫사람을 다루는데 능한 귀족 출신의 용병이다. 이런 데에 있어서 사람들을 휘어잡는 것은 적어도 이들보다는 내 전문이었다.

“저치는 누구야?”

“왜 그 있잖아...”

“아 트로가?”

“그게 진짜래?”

‘웅성웅성’

내가 나서자 잠시간 조용했던 주변은 다시금 우리 존재를 두고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타국에서 활동했던 셀시는 몰라도 이쯤 되면 제국 용병들 사이에서 우리 이름이 충분히 알려졌을까 싶었는데 아니었던 듯 했다.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이래저래 혼란스러우신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의뢰주 앞에서 이런 추태라니요. 혹시, 겁먹으신 거 아니죠? 선.배.님.들.”

“우리 강철 전사 길드를 앞에 두고 겁이라니!”

“그럼요, 그럴 리가 없지요. 그냥 한번 여쭤봤을 뿐입니다. 그럼 역시 이번에도 선두는 강철 전사 길드에서 맡아주시는 거죠?”

“큼큼, 길드 간부들과 상의해 보겠네.”

사람을 다루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가장 잘 먹히는 법이다. 첫 번째는 영향력으로 찍어누르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보다 높은 지위의 사람, 높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 앞에서 작아지고 고분고분해지는 법이다.

아쉽게도 이 방법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내 예상과 다르게 우리의 인지도가 기대에 미치지 않았던 듯 했다. 아마 푸른 가지 용병 클랜의 회복이 더뎠거나, 용병 협회 측에서 사건을 축소한 게 주효했을 것으로 보였다.

어찌 되었든 첫 번째 방법이 실패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었다. 더욱 효과적인 두 번째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은근히 자존심을 긁어주는 것이다.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천한 용병들이라고는 하나 이 자리에 모여든 용병들은 그래도 나름 제국 내에서 콧방귀 좀 뀐다는 용병 길드의 수장들이다.

비록, 마물 토벌이 주력은 아니지만, 강철 전사 용병 길드는 대리 전투나 각지의 영지전에서 선봉에 서기를 자처하는 용맹한 길드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나의 첫 목표는 강철 전사 길드였다. 원래 이런 것은 수 싸움을 잘하는 두뇌파보다는 단순한 힘의 논리를 가진 육체파에게 더 잘 먹히기 때문이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아주 사소하고 간단한 도발 한 번에 강철 전사 길드장은 넘어와 버렸고, 조심스레 한발 물러서며 입을 닫았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저 마물 무리에게 홀로 돌격하실 필요 없으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큼, 그런가. 선봉은 우리가 맡을 테니 언제든 말하시게.”

“자네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네, 협회에서 전례 없는 전적을 내었다는 것도 저기 머리만 단단한 자 말고는 이 자리에 모두가 알고 있네.”

“뭐? 그거 나 말하는 거냐? 너 이 뱀 같은 놈이!!”

“얘기에 따라올 자신이 없으면 미리 입을 닫아라. 시키는 대로 하는 것, 그 정도는 단단한 머리밖에 장점이 없는 너라도 할 수 있을 거다.”

애초에 나는 강철 전사 길드 인원들을 선봉에 세울 생각이 없으므로 이 정도면 주위를 충분히 나에게로 집중시켰다 싶어 상황을 정리했다.

농담이란 내 이야기에 강철 전사 길드장은 이 자리에 모인 다른 길드장들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내가 다시 나서려던 순간 움직인 것은 테이블의 가장 끝자리 문에서 가장 가까이 앉아있는 사람이었다. 여태껏 내가 들어온 이후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고 나를 노려보던 사람이다.

내가 이곳에서 신경을 쓰던 유일한 사람 또한 저 사람이었다. 출발할 때는 몰랐지만 레디움 성채를 지나 펠링턴으로 오며 나는 이미 이곳에 어떤 길드들이 파견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제국의 압박을 받은 제국 용병 협회도 이번 사건을 가볍게 여기지 않다 보니 급조하긴 했어도 나름 콧방귀 좀 뀐다는 유명한 길드들을 이곳에 파견하였다.

강철 전사 길드, 조용한 새 길드, 이빨 수집가 길드, 붉은 깃발 길드, 그리고 사냥하는 뱀 길드까지 다섯개의 길드들로 제국 내에서 라면 웬만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길드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거슬려 했던 게 바로 사냥하는 뱀 길드였다. 보통 다른 용병들의 경우 대부분 전략과 전술보다는 저기 강철 전사 길드나 다른 길드들처럼 그저 무력만 앞세워 의뢰주가 시키는 대로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사냥하는 뱀 길드는 다른 용병 길드들과는 다르게 무력보다는 전략과 전술, 소규모 부대 운영과 용병술에 굉장히 능한 길드로 유명했다.

사실 사냥하는 뱀 길드는 만들어진 지 1~2년 정도로 얼마 되지 않은 신생 길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 바로 저 길드장 덕분이다.

평범한 갈색 머리칼과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외모를 가진 사냥하는 뱀 길드의 길드장은 제국 용병계에서 꽤 유명하고 여러 소문이 많은 사람이다.

애초에 제국 출신이 아니었고, 용병 등록 이전의 출신도 명확하지 않았다. 거기다 뛰어난 수완과 용병답지 않게 머리를 쓰는 타입이다 보니 소문에는 남부 왕국 왕족의 사생아라느니, 몰락한 귀족이라느니 말이 많았다.

확실히 수완은 어디 가지 않는 듯 했다. 잠잠히 지켜보다 이 한 번의 나섬으로 사냥하는 뱀 길드장은 두 가지를 취했다. 바로 내게 집중되었던 이목과 마치 이곳의 리더는 자신이라는 듯한 분위기까지 두 가지를 말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저 정도 수에 당해 줄 내가 아니었다.

“진정하시지요. 이곳은 서로 협력해 마물을 토벌하려 모인 자리지, 누가 잘났는지 가리기 위한 자리가 아니니까요.”

“말은 잘하는군. 상석에 나섰으면 응당 책임을 져야겠지. 마물 무리를 해결할 방법이 있는가.”

“뭐, 대단한 방법은 아니지만 생각해둔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제 의견보다는 경험 많으신 선배님들의 전략을 먼저 들어보는 게 순서 아니겠습니까.”

“역시 소문은 믿을게 못 되는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군. 생각한 게 없으면 없다 솔직히 말해라.”

나는 다시금 상황에 끼어들어 중재하며 이곳의 관리는 내가 하는 것이라는 분위기를 내었다. 한번 눈치를 주어 밀어냈는데 내가 또다시 끼어들 줄은 몰랐는지 사냥하는 뱀 길드장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는 내가 했던 것과 거의 동일한 방법으로 은근슬쩍 내 자존심을 긁어내며 분위기를 휘두르려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럴...”

“뱀 대가리,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은근히 리더 행세하려 하지 마라. 잘난 네놈이 생각한 전략부터 한번 들어보자.”

나는 내가 했던 공격에 내가 당할 만큼 어리숙하지도 멍청하지도 않다. 사냥하는 뱀 길드장의 공격에 반응하려던 찰나 나를 대신한 이가 있었다.

이번에 나선 것은 조용한 새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소문에 벙어리가 아닐까 싶은 정도로 말이 없다던 그가 이런 식으로 나설지는 몰랐는데 어찌 되었든 그가 나를 위해(?) 나서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솔직히 조용한 새 길드는 이번 의뢰에 어울리는 길드는 아니다. 조용한 새 길드는 보통 전면전보다는 암습이나 기습에 능한 길드기 때문이다.

조용한 새 길드는 기습에 능한 만큼 사냥하는 뱀 길드에 비해 용병술에는 조금 떨어질지라도, 전략과 전술에는 밝은 길드였고 은근히 자신들이 이곳의 머리다 라고 주장하는 사냥하는 뱀 길드장이 아니꼬웠던 듯 했다.

“못할 것이야 없지, 저기 강철 전사 길드를 선봉에 세우고...”

“아까부터 우리가 선봉에 서고 말고를 왜 네가 정하지? 우리는 네 산하 길드가 아니다!”

‘웅성웅성웅성’

자신의 날카로운 공격의 성공을 자신하며 나를 향해 의기양양한 태도로 교활한 미소를 짓던 사냥하는 뱀 길드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듯 보였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신이 구상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을 설명하려 시작했으나, 그것은 바로 강철 전사 길드에게 가로막혔다. 그리고 이야기는 아까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의 상황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용병들이란 게 으레 그렇다. 기사들이나 장교들이야 병사들을 갈아 넣어서라도 공을 세우기 위해 애쓰지만, 용병들은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공과 명예보다는 손해 없이 의뢰를 완료해 그저 세를 불리고 영향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다. 그렇다 보니 다들 최대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된 것이다.

‘쾅!’

“자자, 싸우지들 마시지요. 누가 선봉에 서느냐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태평한 소리 하는군, 우리 중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너희 셋이 선봉이라도 된단 말이냐?”

“뱀 대가리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군. 선봉 없이 어떻게 저 마물들을 토벌한다는 거지?”

나는 소란스레 다시 고성이 오가는 집무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금 혼잡해진 집무실 내부를 보며 머리를 부여잡는 조나스 자작의 얼굴도 보았다.

나는 그렇게 서로 막말을 건네고, 당장이라도 싸움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을 방관하며 시간을 끌었다. 지금은 조금 나의 존재를 지워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이런 수 싸움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바로 밀당이다. 압도적으로 찍어누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적당한 밀당은 필수였다.

너무 드러내면 의심하고 시기하고 경계하기 마련이고 너무 감추면 외면받고 무시당하기 마련이다. 이 중간에서 적당히 치고 빠지면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탈이 안 나는 법이다.

적당히 때가 되었다 싶을 때 나는 다시 책상을 거칠게 내려치며 주의를 집중 시켰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발언에 반응한 것은 역시나 이번에도 사냥하는 뱀 길드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애초에 전체의 주의를 끌고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하려는 목적이었던 만큼 조금 전까지 사냥하는 뱀 길드와 반목하던 조용한 새 길드도 사냥하는 뱀 길드장에 동조하며 나섰다.

“간단합니다. 전부 토벌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닥쳐라 뱀 대가리. 황금패의 이명은 허울이 아니다. 생각이 있으니 말을 내뱉었겠지. 맞나?”

“네 맞습니다.”

“그럼 우리를 납득시켜봐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조용한 새 길드는 이번 의뢰에서 따로 행동하겠다.”

나는 이번에도 강경한 어조로 선을 그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노발대발하며 나선 것은 사냥하는 뱀 길드장이었다.

사냥하는 뱀 길드장은 수완가라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감정 조절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는 듯 보였다. 차라리 오히려 이런 면에서는 조용한 새 길드장이 더욱 나아 보였다.

물론, 본래 단순한 이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도발에 쉽게 넘어오고 머리를 좀 쓴다는 자들은 자신보다 잘난 이를 쉬이 인정하지 않는 법이다.

지금도 그러했다 여지껏 저 잘난 맛에 나름 용병계에서 떵떵거리며 지냈던 사냥하는 뱀 길드는 이번에도 자신이 세운 작전으로 여러 거대 길드를 지휘하며 협회 내에서 입지를 공고히 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잘만 된다면 단순한 길드장을 넘어 협회의 한자리도 꿰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다른 길드의 저항이 거세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내가 나타난 것이다.

그의 입장에선 난데없이 나타난 내가 자신도 생각하지 못한 기막힌 전략이 있다는 듯이 떠들어 대니 믿기 어렵기도 하고 인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그의 입장과는 다르게 조용한 새 길드장은 꽤 냉정한 편이었고 적어도 지금만큼은 내 편을 들어주었다.

물론 그도 마냥 내 편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를 빌미로 이곳의 자신이 이곳의 리더가 되거나 지지부진하게 이곳에서 떠드는 것 보다 본인의 장기를 살리기 위해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기 위함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들 앞에서 호언장담한 만큼 정말 단호하고 확실한 전략을 이미 구상해 두었다. 그리고 그 대단한 전략을 구상하는 것은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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