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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몰락한 귀족으로 살아남는 방법

24화 "마도공학" - 리뷰 만물상

by 리뷰 만물상 2023.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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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몰두한 탓일까? 도안을 마무리한 후 그려놓은 도안을 품에 숨긴 뒤 창문을 여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길고 긴 작업을 완료했다는 뿌듯함과,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총'에 관련된 지식을 전부 동원하여 가칭

'마도공학 총'의 완성된 도안을 로날프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니 마치 선생님에게 숙제를 검사 맡는 학생이 된듯해

기분이 묘했다.

 

어차피 지금 잠을 자기엔 늦었단 생각이 들어 방에서 나와 1층으로 향했다. 1층에 있는 여관의 점원에게 목욕물과

식사를 주문하곤 올라왔다. 방으로 올라와 간단히 식사와 목욕을 한 뒤, 바로 도안을 품에 넣은 채 망토를 뒤집어쓰고

나와 이제 익숙하게 미행을 따돌리며 아이언 보틀로 향했다.

 

아침의 아이언 보틀은 비교적 한산 했다. 로날프가 오늘 만나자고 했지 언제 만나자는 이야기는 없었기에 나는 어차피

일찍 나온김에 차 나 마시며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언 보틀은 유명한 펍이지만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야장들 이라도

아침나절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은 드물기에 아침에는 카페를 겸업하며 운영되고 있었다.

 

"뭐야 왜 이리 일찍 왔어?"

 

잠시 앉아서 차를 홀짝이며 밖을 구경하고 있자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뒤돌아봤다. 역시 로날프였다.

로날프는 여느 때와는 다르게 코와 얼굴에 홍조가 없는 것을 보니 오늘은 정말 마음을 다잡고 나올 각오를 했는지

술조차 마시지 않은 듯했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제국의 귀족을 말이에요 어떤 난쟁이가 약속을 잡는데 시간도 정하지 않고 가버리더라고요?"

"여전히 말 많은 애송이로군, 실없는 소리 할 거면 나는 가겠다."

 

"쳇, 재미없는 난쟁이 같으니라고. 이쪽에 앉아봐요 그렇게 도안을 그려왔으니까."

 

나는 로날프가 생각보다 일찍 나오고 웬일로 술도 안 마시고 나와 괜히 무게 잡으며 말하는 게 얄미워서 농담으로

맞섰지만, 각오를 다진 로날프는 역시 만만한 난쟁이가 아니었다. 내 농담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냥 가겠다 엄포를

놓기에 장난기를 접고 내가 그린 도안을 건넸다.

 

도안을 받은 로날프는 신중하게 도안내용을 살피는 듯했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신중하게 보고 또 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성이 났는지 도안을 테이블에 쾅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왜요? 마음에 안 드세요?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도안을 다시 보았지만 내가 그린 도안은 정말 뉴란드 대륙에 없던 확실히 새로운 개념의

무구였다. 나는 이상함을 느꼈지만 왠지 성나보이는 로날프를 자극하고 싶지 않아 도안을 접어 다시 품에 넣으려 했다.

 

"이 애송이 백작 놈이!! 니 머릿속에 존재하는 걸 그저 그려준다고 내가 어찌 알아봐!! 설명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기차화통을 삶아 먹었나 로날프의 목소리는 아이언보틀 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로날프는 내심 조금 분하고

억울했던 것 같아 보였다. 부족 최고 대장장이였고,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기계공학과 같은 여러 가지를

공부했기에 본인 또한 당연히 알아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듯하다. 나 또한 그리 생각했기에 별다른 설명 없이 그저 도안을

건넨 것이고.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로날프가 도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애초에 뉴란드 대륙은 기계공학이 천대받아 발전도가 높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내가 그린 도안은 비록 현대의 총과 구조와 구동 원리는 다를지언정

뉴란드 대륙에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던 무구였기에 아마 내 도안은 가히 혁신에 가까운 내용일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분한지 씩씩대는 로날프를 진정하며 도안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고안한 도안은 두 가지였다.

처음에는 현대의 총을 고려했었다. 우선 리볼버 혹은 권총 형태를 구상했었지만 아무리 손재주가 매우 뛰어나고

야금술을 위해 태어난 난쟁이 종족이라 하더라도 이 세계에는 기계적인 정밀한 금속 정형 기술이 없기 때문에 부품의

소형화에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가 리볼버를 그려내었다면 로날프는 더욱 놀랐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혀 만들기를 포기

하거나 거기에만 매달려 더욱 아무것도 하지 못하리라.

 

그렇게 현실적인 부분과 타협해서 고른 내 선택은 머스킷 형태와, 중절식 산탄총 형태로 어차피 나도 게임이나 영화를

통해서만 접했을 뿐 실물을 접하거나 설계도를 알진 못하지만, 현대의 화기에 비해 비교적 구조가 단순한 총기류 이기에

나도 어림 짐작하며 그려낼 수 있었다. 적당한 길이의 총신의 형태로 제작해 앞에 총검을 부착하거나, 중간에 조그만

가드를 추가해  근접에서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작동 방식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안건을 써놓았다. 처음에는 마법을 이용해 현대의 총처럼 폭발력을 이용해 탄환을

날리는 구상을 하였으나, 과연 '마법과 마술도 화약과 같이 폭발력조절이 될 것인가?, 마력으로 인한 폭발을 견디는

탄환이 제작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에 부딪혀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래서 생각한 게 작동 방식 또한 두 가지로, 하나는 총자체를 아티팩트화 하여 저장된 노리쇠 역할을 하는 곳에 마법을

각인, 그리고 총신을 통해 마법을 가속시켜 아티팩트의 효과를 연계하여 발사하는 방식이 첫 번째로 비교적 단순한

작동방식을 지녔지만, 이 방법은 노리쇠 자체에 각인된 마법의 변경이 어려워 여러 상황에 대응이 어렵고, 두 가지

아티팩트를 제작하여야 하기에 비용이나 재료적으로도 고민이 깊었다.

 

그래서 생각한 두 번째 방식은 총자체는 그저 무구로 두고, 총에 맞는 탄환을 아티팩트로 제작하여 마법을 발사할 수 있게 된다면 한 가지의 총으로 다양한 마법을 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하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희망사항일 뿐이고,

탄환을 아티팩트로 제작 가능하지 여부는 알 수 없었다. 탄환이 실전성을 띄려면 휴대성이 있어야 하는데 손가락 두 개 정도 이상 크기를 벗어나게 되면 아마 실전성이 부족하기에 실현이 가능한지 여부는 오로지 내 앞에 있는 미친 난쟁이 로날프의 실력에 달려있었다.

 

로날프는 내 설명을 들으며 진중한 태도로 때로는 고민하는 것처럼, 때로는 흥분한 것처럼, 또 때로는 감탄을 금치 못하는

여러 가지 표정을 보여주며 들었다. 나 또한 로날프에게 설명하며 성질만 부리던 이 난쟁이가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 장황한 설명이 끝난 뒤 로날프는 인상을 찡그리며 도안을 다시 한참을 들여다보다 내려놓고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잠시간의 침묵 뒤에 로날프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런 구상이 가능한지 모르겠군, 보기에는 약관의 나이도 채 넘기지 못한 것 같은 애송인데, 평생을 야장일을 한

 나보다, 종족 자체가 이런 장치를 만드는 게 목적인 고블린 놈들보다, 마법을 다룬다며 저 잘 났다 으스대는 마법사

 놈팡이들 조차 생각하지 못한 발상이야."

"하. 하. 하. 하, 제가 원래 좀 영특해서요 어릴 적부터 영재소리를 듣고 자랐답니다."

 

로날프는 나를 치켜세우며 띄워줬고, 살짝 의심이 깃든 듯한 그의 말에 나는 괜스레 뜨끔해 어색한 웃음과 농담으로

넘어갔다.

 

"자네의 이 도안은 내가 생각했던 무구의 이상향 그 자체일세, 순수하게 기뻐해도 좋아 나 같은 사람의 인정을 받은 거니까.

 흠흠, 물론 이 도안은 갓 태어난 난쟁이도 코웃음 칠만큼 형편없기 그지없지만 말이지."

"칭찬 고맙네요 로날프, 그럼 저 합격한 건가요? 그리고 이거 만들 수 있겠어요?"

 

로날프는 내 도안을 보곤 연신 나를 칭찬하다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도안의 조악함을 지적했다. 물론 나도 알고 있지만

지금 그의 심중이 어떨지 대충 짐작은 하기에 따지지 않고 그에게 결론을 물었다.

 

"합격이고 말고도 없어, 지금 당장이라도 이 녀석을 만들어보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니까.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는

 시작해 봐야 알 테고. 무구 자체를 아티팩트로 만드는 건 의미 없네, 그럴 바에는 마법지팡이나 만들어 쓰지 괜히 재료만

 낭비하는 꼴이야. 다만 이 두 번째 탄약? 아이디어는 꽤나 흥미롭구만,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오 다행이네요, 저도 두 번째로 하고 싶었어요, 다만 가능할지 실현 여부를 모르다 보니 차선책으로 첫 번째를 쓴 거고요."

 

로날프는 첫 번째 안에는 의미 없는 생각이라 일축했고, 두 번째 안건인 탄환을 아티팩트로 만드는 발상에 대해서는

굉장히 흥미로워했다. 저리 자신만만해하는 것 보니 일단 내가 원하는 탄환 사이즈의 금형 자체는 가능한 듯해 보였다.

 

"자, 그럼 뭘 만들지는 정했고, 제작을 도울 마법사 놈팡이는 구했겠지?"

"아... 하하하... 그건 아직 하지만 걱정 마요, 로날프가 이 '총'의 구조를 파악하고 만드는 동안 꼭 구해올 테니까요."

 

로날프에게 자신만만하게 인챈터를 구하겠다 했지만 쉽지 않을 이야기였다. 애초에 마탑에선 인챈터를 귀한 인재로

다루기에 내줄 가능성이 낮았고, 인챈터 또한 무언가를 만드는 장인으로서 콧대 높은 난쟁이들과는 보이지 않는

기싸움 같은 게 있어, 난쟁이와 함께 작업할 인챈터를 구하는 것도 꽤나 어려운 일일게 뻔했다. 나는 우선 급한일을

마무리하고 꼭 마탑을 한번 들려야겠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하여간 애송이 일처리하는 거 하고는.... 쯧... 나도 준비할 것들이 있으니 마무리되는 대로 출발할 테니 자네 영지는

 따로 가도록 하지, 자네 영지가 어디에 있나?"

"울부짖는 숲에 가면 있을 거예요, 저도 따로 볼일들이 있어서 살짝 돌아가야 하니 제 서신을 들고 찾아가면 될 거예요."

 

그렇게 로날프와 나는 서로 각자 출발해 영지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며 헤어졌다. 물론 로날프가 그런 오지에 영지가

있냐며 자신을 놀리지 말라고 소리치며 약간 소란스러운 해프닝이 있었지만 비교적 잘 마무리 지어졌다.

 

오늘은 내가 수도에 공식적으로 머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물론 더 있으려면야 더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 듀발의

의심을 사게 될 것이 뻔했고, 전쟁을 치르고 나서 영지에도 못 들른 채 외지에서 언제까지고 시일을 보낼 순 없기에 최대한 수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저녁에는 연회의 마지막 날이기에 필히 눈도장을 찍어야 하므로 지금 자유롭게 돌아다닐 만한 시간이 길게 남지 않았다.

나는 망토를 벗어 치우고 속 안에 갖춰 입은 귀족의 복색을 정돈한 뒤 중앙 대로변의 마법용품상점에 다시 한번 향했다.

 

저번에 생각보다 거금을 사용해서일까? 아님 내 얼굴을 알아봐서일까, 내가 들어서자마자 지배인은 헐레벌떡 뛰어와

나를 다시 맞이했고, 어떤 일로 방문했는지 묻는 지배인에게 나는 3층에 용무가 있다 말했고 지배인의 안내로 다시금

여러 차례의 보안장치를 해제 후 3층으로 향했다.

 

3층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내 예상이 맞았던 듯 한쪽에 놓인 테이블에서는 향긋한 차 향이 풍기고 있었고, 마치 저번

방문 이후 시간이 멈춘 듯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심지어 인챈터 마저 입고 있는 로브의  색깔만이

바뀌었을 뿐 매끄러운 미소와 헤어스타일 또한 동일하게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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