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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몰락한 귀족으로 살아남는 방법

25화 "황제" - 리뷰 만물상

by 리뷰 만물상 2023.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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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셨네요 후훗, 이쪽으로 앉으세요."

 

인챈터는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내게 인사를 건네며 자리로 안내했다. 그리곤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찻잔에 차를

따른 뒤 내게 건네며 물었다.

 

"이번엔 어떤 일로 오신 거죠? 아티팩트 제작? 아니면 개인적 호기심?"

"개인적 호기심 한스푼에, 부탁할 것 한 가지 얹어서."

 

"우리 호기심 많은 귀족분께서는 저에게 무슨 부탁이 있으실까요? 엄청 궁금한데요?"

 

자연스레 용무를 묻는 그녀에게 나는 반쯤 용무를 반쯤 농담 식으로 얘기했다. 보통 내가 알기로는 인챈터들은

환한 미소와 친절한 말투로 응대하지만 절대 사무적인 태도 이외의 말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내 앞의

인챈터는 저번에 했던 나와의 대화가 즐거웠던지, 아니면 내 외모나 정체에 대한 관심인지는 몰라도 같이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내게 물어왔다.

 

내가 여자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없기에 망정이지 내성이 없는 사람이 봤으면 금방이라도 휘릭하고 홀릴 것

같은 태도였다.

 

"인챈터씨에게서 이런 모습을 다 보네? 부탁은 간단(?)해 마탑주를 만나게 해 줄 수 있어?"

 

자신의 행동에 조금은 난처해하며 부끄러워할 줄 알았는지 인챈터는 내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대응하자

다소 놀라면서, 이내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내 이어지는 내 덤덤한 부탁에 깜짝 놀라 눈만 동그랗게

뜨고 깜빡이며 한참을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마탑주요? 뭐 소개장 하나정도는 써드릴 수도 있긴 하지만... 아니 무슨 마탑주 만나게 해 달라는 부탁을 옆집

 할아버지 이름 알려달라는 듯하게 하죠?"

 

한참을 그렇게 쳐다보다 내 질문에 반사적으로 대답을 하다 정신을 차렸는지, 갑자기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반응을 무시하곤 내 목적을 다시 한번 전달했다.

 

"역시, 제국의 수도에 오는 인챈터쯤 되면 믿을만한 연줄 정도는 있을 줄 알았어. 그럼 소개장 하나 부탁할게."

"이보세요, 제 소개장은 꽤나 귀하답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그렇게 슥슥 써줄 만큼 저는 가벼운 사람은 아니라고요."

 

내 무시에 약간 기분이 상했단 듯 그녀는 약간 뾰로통한 목소리로 소개장을 써줄 순 있지만 쉽게는 안된다 어서 자신을

설득해 보라 라는 태도로 말했다.

 

"흠.... 어떻게 하지 지금은 가지고 온 자금도 거의 다 써서 돈도 없는데..."

"아이씨, 내가 돈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어려 보이는 분이 사람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네! 좋아요! 돈은 됐어요

 용건을 알려줘요 마탑주를 만나서 무얼 하려는 건지 알려주면 써줄게요."

 

"간단해 마탑주를 만나는 것도 개인적인 호기심, 거기에 부탁 한 스푼 더해서."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면 소개장도 없어요. 대답 똑. 바.로. 하세요. 아, 여기는 비밀이 보장되니 안심하시고요."

 

그녀의 애교 섞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시하고 계속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그녀도 골이 났는지 나에게 용건을

마탑주를 만나려는 용건을 알려달라 했다. 혹시나 싶어 나는 대충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했지만, 그녀는 집요하게

물어왔고 내가 곤란해하는 부분을 눈치챘는지 이곳의 보안에 대해 다시 한번 언급하였다.

 

"하아... 어쩔 수 없지... 희귀한 독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래, 일반적인 독은 아닌 것 같아서."

"독이요? 흠... 일반적이지 않다면 역시 마탑을 통해 알아보는 게 제일 빠를 거예요. 그럼 부탁한다는 건요?"

 

"인챈터 한 명을 조금 보내줄 수 있을까 부탁하려고, 원래는 그 각인기를 대여해 달라 하고 싶었는데 그때 보아하니 그거

 빌려달라는 것보다 인챈터 한 명을 단기간이라도 보내달라는 부탁이 쉬울 듯하네..."

"인챈터요? 무슨 일 때문인지는 말 안 하실 것 뻔하고.... 각인기는 당연히 안될 거예요, 마탑에서도 정말 소량만 제작되고

 제작 방법 자체도 극비니 까요. 좋아요, 소개장 써드릴게요."

 

나는 결국 그녀에게 내가 마탑주를 보려 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현재 듀발이 사용하는 독은 분명히 일반적인 독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독이 아닌 주술적, 혹은 마법이나 마술적으로 가미된 독일 것이라 짐작되어 마탑주에게 한번 확인을 요청하려던 목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집요하게 캐물을 것을 걱정했지만 생각

보다 그녀는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만나려는 목적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듯 집요하게 묻진 않았다. 

 

그녀는 부탁이 무엇인지도 물어보았고 반대로 그녀는 인챈터를 한 명 파견해 달라 부탁할 것이라는 내용에는 굉장한

관심을 보이며 대답해 주었다. 언뜻 느끼기엔 마치 내가 마탑주에게 인챈터 파견을 요청하는 것 때문에 소개장을 써준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자 소개장은 여깄 어요, 마법적 처리를 해두었으니 열어볼 생각은 마세요. 마탑주가 아니면 여는 순간 내용이 전부 지워질

 테니까요. 또 봐요 꼬마 백작님."

 

그녀는 안쪽에서 잠시간 양피지에 무언가를 적었고 잠시 뒤 소개장이라며 내게 전해주었다. 소개장은 일반적인 서신이나

소개장과는 다르게 진짜 나 마법사요 하는 것처럼 양피지가 돌돌 말려있었고 그 위에 직인이 찍혀있었다. 아마도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무언가 여러 가지 마법적 처리를 한 듯했다.

 

그녀의 마지막 인사가 왠지 의미 심장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인사말로 넘겼고 나는 그렇게 소개장을 받아 들고 마법용품점에서 나와 황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황궁 연회의 마지막 날은 첫날과는 다르게 더욱 성대하게 치러졌다. 웬만한 지방 귀족들 또한 모두 올라와 참석하기에

황실의 건재함과 영향력을 모두에게 각인시켜야 하기에 다른 날들보다 더욱 신경 써서 화려하게 치러지는 편이었다.

 

나는 황궁 입구는 굉장히 분주했다 수십대의 마차가 도착하여 신분을 확인하며 안내받고 있었고 나는 도보로 왔기에

마차가 드나드는 길 쪽이 아닌 도보로 들어갈 수 있는 한쪽의 쪽문으로 가니 비교적 한산했다. 경비의 안내를 받아 내게

배정된 귀빈실로 향했고, 귀빈실 입구에서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던 듯 한 인물을 발견했다. 

 

"공사가 다 망한 것 같군 데일 백작."

 

황실 입구에서 여기까지 안내받는 동안 언제 보고를 받았는지 대머... 아니 듀발 후작이 귀빈실 앞에 서서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후작님. 오랜만의 수도라 잠시 돌아다니며 옛 추억을 돌아보았습니다."

"쯧, 그 알량한 영지라도 지키고 싶다면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라 데일 백작, 수도에는 보고 듣는 눈이 많다."

 

나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듀발 후작에게 말했고. 듀발은 더 말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차며, 내게 경고를 하고는 금세 사라졌다. 나는 혹시나 내 동선이 들켰나 걱정했지만 만약 내 목적이나

동선이 들킨 거라면 지금처럼 경고로 넘어가진 않았을 거란 생각에 안심하며 귀빈실로 들어갔다.

 

귀빈실에 들어와 잠시간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이내 황실의 시녀가 들어와 연회복을 건넸고 나는 시녀의 도움을 받아

연회복으로 갈아입은 뒤 연회장으로 향했다. 연회장 안은 바깥에서 본 수많은 마차만큼이나 분주하고 사람이 많았다.

 

첫날 이 넓은 연회장을 누가 다 채우나 싶었는데 중앙귀족과 지방의 고위 귀족뿐 아니라 수도에 얼굴도장이라도 찍고

싶어 참가한 지방의 군소귀족들까지 참석하니 황량해 보였던 연회장이 북적였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연회는 지속되었고 그렇게 연회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 즈음 입구의 안내원이 연회장 전체가

울릴 정도로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먼발치서 간단히 목례를 주고받으며 혼자 있었고, 안내원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며 아마 저 안내원은 제국 내에서 제일 목소리가 클 것이라는 우스운 상상을 하고 있으니 순식간에 장내가 조용해지며 일반 귀족이 들어오는 입구가 아닌 황궁 쪽에서 직통으로 연결된 통로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윽고 통로 안쪽에서부터 황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황제는 최근 건강이 안 좋다는 이유로 첫날 연회 시작 때

축사를 하곤 두문불출하였었고, 연회의 마지막 날인 오늘이 돼서야 제대로 연회에 참석하였다. 하지만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언뜻 보기에는 황제는 생각보다 건강해 보였다.

 

그렇게 연회장으로 들어오자 그랑후작이 황제를 보필하며 주변의 면면의 인사를 받기 시작했다. 나는 그랑 후작이나

나의 어머니가 황실의 인척관계인 것을 몰랐기에 기존에는 보지 못했지만 확실히 그랑 후작의 근처에 황제가 서니

닮은 구석이 있는 듯했다.

 

그렇게 황제는 그랑 후작의 안내를 받으며 제국 내 주요 인물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서서히 내게로 왔다.

비록 변방으로 쫓겨나긴 했으나, 나의 볼든 백작가 또한 제국의 개국공신 가문중 하나이므로 나와 황제의 대면은 그

누구도 수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황제는 내 앞에서 그랑후작에게 귓속말을 통해 우리 가문의 연혁과 내가 누군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듣고 있는 듯했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황제의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건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곤 처음이기에 본의 아니게 유의 깊게

바라보게 되었다.

 

처음 보았던 건강해 보였던 모습과는 달리 나는 지금의 황제가 알 수 없는 독에 중독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단

사실을 알기에 다시 본 황제의 얼굴을 생각보다 창백했고, 무기력해 보였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볼든 백작가의 현 가주 데일 볼든 백작입니다."

"고개를 들라, 자네의 모습에서 자네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듯하군, 제국의 변방 개척을 위해 자원하여 부단히 노력한다

 들었다. 제국의 모범이 되는 모습이니라. 내 그대의 노고를 잊지 않으마. 재상은 들으라, 데일 백작에게 제국 차원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하라. 제국의 피와 땀이 되는 일이다."

 

이윽고 설명이 끝났는지 나를 마주 보는 황제를 향해 나는 한쪽 무릎을 숙이며 예를 갖추어 인사하였다. 그랑 후작이 나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했는지 황제는 나에게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치하하였다. 비록 내가 변방으로 간 게 제국 변방 개척을

위해 자원한 것으로 보고되긴 했어도 말이다.

 

"감사합니다 폐하, 신 황제 폐하의 은덕에 더욱 분골쇄신하겠습니다."

 

예를 갖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황제는 다른 사람들처럼 가벼운 악수가 아닌 갑작스럽게 포옹하였고, 이내 나조차도

당황했지만 조금 전 내가 변방 개척을 자원했단 내용과 황제의 치하가 있어서 이 장면을 질투하긴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대의 노고를 들었다, 내 힘없는 황제라 부탁할 곳이 그대뿐이구나. 나를 돕겠다 나서줘서 고맙다.'

 

나를 가볍게 포옹한 황제는 내 귀에 조그맣게 말을 전했다. 황제는 이 말 한마디를 나에게 전하기 위해 본인의 의지가

들킬 수 있음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치하한 듯했다. 포옹한 황제의 품은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품이 큰

예복을 입어 건강해 보였으나 안쪽에는 두꺼운 옷을 겹쳐 입었는지 살의 감촉이 아닌 폭신한 솜의 감촉이 느껴졌다.

가까이서 본 황제의 손톱도 푸르스름했으며, 지금의 자리와 갖춰 입은 예복을 제외하고 제대로 본다면 중환자라 봐도

무방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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