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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몰락한 귀족으로 살아남는 방법

50화 "조우" - 리뷰 만물상

by 리뷰 만물상 2023.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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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혹시나 싶어 물었을 뿐, 봉인을 이용할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좋은 생각이네, 나 또한 그대들이 싫지 않아, 특히 보통의 인간과 다른 그대는 매우 흥미로워. 나는 그대들과 굳이 적대하고 싶지 않네."

자존심 상하긴 하더라도 솔직히 인정할 부분은 인정 해야 했다. 소드마스터 중위에 오른 알프와, 수습 마녀 이오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동시에 덤빈다고 하더라도 현재 처참한 꼴을 하고 있고 심지어 봉인상태인 그를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이 눈앞의 인외의 존재가 풍기는 기세는 가희 스스로를 한 종의 왕이라 칭할 만 했다.

나는 여전히 제몬드를 향해 매서운 살기를 뿜으며 날을 세우고 있는 알프를 쳐다보며 경계를 풀 것을 눈치 주었고, 제몬드에게도 우리가 봉인을 악용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몬드는 내뿜던 살기를 거두며 우리에게 적의가 없음을 다시 한번 밝히고 나에 대한 관심을 표했다.

"봉인의 매개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바가 있소?"

"그건 모르네, 하지만 봉인물인 나에게서 멀어지면 봉인의 효력이 약해지기에 분명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네, 또한 그대라면 봉인의 매개체가 가까이 있다면 반드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걸세."

우리는 봉인에 관련한 지식이 전무했다. 이오나 조차도 봉인술에 관해서는 그저 서적이나 학파의 교수들에게 언뜻 이야기만 들었을 뿐 직접 행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그 봉인의 결과 또한 지금 처음 보는 것이라 했다.

나는 그의 봉인을 풀어줄 것으로 결심을 굳히며, 그에게 봉인의 매개체에 관하여 물었다. 제몬드는 자신을 봉인한 매개체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나, 우리가 봉인에 대하여 지식이 없다는 것을 이해 했다는 듯 봉인에 특징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설명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소, 봉인을 푸는 방법은 어떻게 되오?"

"매개체를 부수거나 해주(解呪) 하면 되네, 그냥 편하게 부수는 게 빠를걸세."

"해주와 부수는 것 간의 차이가 있소?"

"봉인물과 매개체는 서로 결속된 상태라 보면 되네, 해주 하게 된다면 매개물을 통해 언제든 다시 봉인물을 봉인 할 수 있네. 음... 그냥 부수는 게 나을 걸세, 오해할까 봐 이야기하자면 보아하니 그대들은 어차피 봉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듯 하고 방법을 안다 한들 ‘보통의 인간’이 봉인을 행할 수 없으니 말일세."

제몬드는 봉인을 푸는 방법은 두 가지라 했다, 해주(解呪)와 봉인의 매개체 파괴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가능만 하다면 언제든 저 제몬드를 다시금 우리의 손으로 강제할 수 있는 해주가 유리하겠지만 그의 말대로 우리는 봉인을 하는 방법도 모르거니와 안다 해도 ‘보통의 인간'은 봉인술을 행할 수 없다 했다.

말하는 대상이 제몬드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의 말이라면 자신에 대한 봉인 자체를 지우기 위해 거짓을 말할 수도 있으나, 이오나의 말에 따르면 마족은 단 한명 '리프론'이라는 마족을 제외하면 거짓을 말하지 않는 종족이라 했다. 그녀의 말과 지금까지의 대화를 보면 아마 제몬드의 말은 사실일 확률이 매우 높아 보였다.

제몬드의 설명과 함께 나는 잠시간 고민했다. 해주든 파괴든 매개체를 찾아야 하는데 매개체는 과연 어디 있을까 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봉인물과 매개체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효과가 약해진다 했다.

그렇다면 봉인술이 얼마나 강대한 강제력을 지녔는지는 몰라도 처참한 몰골과 함께 봉인된 상태에서도 저렇게

강대한 기세를 뿜는 제몬드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려면 매개체는 분명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방증이었다.

"알프, 이오나 이리 모여봐, 짐작 가는 곳이 있어."

저마다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다르겠지만 그렇게 잠시간 모두 말을 멈춘 채 생각에 잠겼다.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결국 근처에 매개체가 있다면 있을 곳은 단 한 곳뿐이라는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바로 이 동굴에서 유일하게 들어가 보지 못한 바로 이 옆방, 아마도 매개체가 있다면 반드시 그곳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생각이 정리되니 시야가 트였고, 아직 말없이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해 보이는 알프와 이오나를 불렀다. 내 말에 알프는 바로 반응하여 나에게 다가왔고, 반응 없이 생각에 잠겨있는 이오나에게 알프가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터치하자 그제야 이오나는 정신이 들었는지 다소 놀란 듯 했다. 그리고 알프가 말없이 나를 가리키자 이오나도 내게 다가왔다.

"이오나 괜찮아?“

“네 괜찮아요... 다만 제가 본 책에서처럼 마족이 과연 진실만을 말하는 것인지, 그것에 대해 확신이 없어요...”

“괜찮아, 아마 이오나의 말이 맞을 거야. 내가 대화를 해본 마족은 제몬드 뿐이지만 적어도 그의 말에서 거짓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

“네...”

이오나는 자신의 말 한마디로 우리가 제몬드의 말을 진실이라 판단하고 움직인다는 생각에 조금 부담감을 느꼈던 듯 했다. 그런 이오나를 향해 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단순히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라기보다는 실제로 제몬드는 곤란한 질문이라면 대답을 회피할지언정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자, 아무리 생각해도 매개체가 있다면 우리가 동굴에서 유일하게 가보지 못한 곳, 바로 이 옆방일 것 같아."

"네 백작님, 저도 백작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에게 다가온 알프와 이오나에게 내 생각을 말하였고, 내 말을 듣고 잠시간 고민하던 알프는 내 생각에 동의를 표했다. 이오나 또한 내 생각이 맞는다 말은 했지만 계속 신경이 쓰이는지 생각에 잠겨있는 듯했다.

"우선 그럼 이곳에서 나가자."

"그럼 무사를 바라도록 하지."

결심을 굳혔으면 행동은 빨라야 하는 법, 나는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서둘러 행동으로 옮겼다. 우리가 이 방에서 나가려 하자 제몬드는 미소와 함께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부스스스'

문밖의 흰 로브를 입은 자들이 아직 자고 있을 거라 생각해 우리는 조심스레 석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

제몬드가 있던 방을 나온 우리는 동시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자고 있어야 할 흰 옷을 입은 자들이 단 한명도 이곳에 없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우선 진정한 뒤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분명 요 몇일간 없었던 일이었다. 이들은 항상 동이 트기 전까지 자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찌 된 일인지 고민이 거듭되는 내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하였다.

"백작님, 아무도 없는 지금이 기회일 수 있습니다."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알프가 다가와 나지막이 말하였다. 알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야 혼란스러운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기 시작했다.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알프의 말대로 기회는 기회였다. 이곳에는 지금 흰 로브를 입은 자들이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이 옆방의 조사는 보다 수월 할 수 있으리라.

"네 말이 맞아 알프, 우선 옆방을 조사하도록 하자."

'철컥'

알프의 조언으로 정신을 차린 나는 알프와 이오나를 데리고 제몬드가 있는 방 반대쪽의 문으로 향했다. 그렇게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호흡을 다지고 문을 밀자. 우리를 반긴 것은 '철컥' 소리와 함께 잠겨있는 문이었다. 호기롭게 한 행동치고는 당혹스러운 결과에 내가 멍하니 있자, 이오나가 문을 열려 나서려 했다.

"어떤 위협이 있을지 모릅니다. 마법과 마술은 아껴두십시오."

알프가 나서려는 이오나를 제지하며 말했다. 알프의 판단은 냉정하고 정확했다. 어떤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이곳에서 이오나의 마법 혹은 마술은 우리의 여분의 목숨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평소 같으면 간단한 일들임에도 지금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 너무 많은 정보 때문에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었고, 또한 너무 과도 하게 긴장하고 있었던 듯 했다. 바보같이 굴었던 스스로를 자책하며 가볍게 내 볼을 친 뒤 정신을 다잡았다.

'서걱'

앞으로 나선 알프는 단단한 석문의 유일한 단점인 큰 문틈에 칼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약간의 아지랑이가 그의 검에서 피어올랐고 아래로 그으며 문 사이의 문고리를 깔끔하게 잘라내었다. 의지를 실은 검격은 원래 고도의 집중을 유지해야 발휘되는 것이지만 중위의 경지에 다다른 알프에게는 이런 상황에서 가능할 정도로 섬세하게 다루었다.

'부스스스'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더욱 터무니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방 한가운데 석재로 이루어진 제단 같은 공간만이 존재하였고. 가구도, 다른 장식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혹시나 싶어 제단 같아 보이는 곳으로 가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봉인의 매개체가 이곳에 없다면 있을 곳은 정말 딱 한 곳 뿐이네."

"다른 짐작이 가는 곳이 있으십니까?"

"시술자, 이곳에 없다면 아마 그자가 가지고 있을 거야."

나는 내심 내가 문제를 너무 쉽게 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단순하게 동굴에서 유일하게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곳 이곳에 있을 거라 막연하게 단정 지으며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냉정히 생각해보자면 매개체와 같은 그런 중요한 물건이라면 어딘가에 두는 것보다 항상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할 터였다.

"이곳에서 마나흔이 느껴져요, 시술자는 분명 이곳에서 마술을 발현했어요."

제단을 한참 둘러보던 이오나가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이곳이 어떠한 용도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몰라도 분명한 건 이 동굴에서 제몬드의 마나를 통해 마술을 발현했고. 마나흔이 남아있다는 건 적어도 시술자가 이곳 어딘가에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조용히 나가서 사람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동굴 안을 다시 한번 찾아보자."

내 말에 알프와 이오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우리는 다시 제단이 있는 방을 나와 흰 로브를 입은 사람들의 숙소로 보이는 곳을 지나 공동으로 나왔다.

‘부스스스’

“?!”

공동으로 나온 우리를 기다린 것은 흰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기다란 봉, 칼, 몽둥이 등 각자의 손에 하나씩 무기를 쥔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렇게 서른명의 흰 로브를 입은 사람들 뒤쪽으로 여태껏 보지 못했던 머리에 '뿔'이 하나 솟아나 있는 자가 기다란 지팡이를 손에든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침입자다 저들을 제거하라!"

'데카 톤! 데카 톤! 데카 톤!'

서로 아주 잠시간의 대치가 이어지고 혹시나 이들과 대화가 통할까 싶은 순간 뿔이 솟은 자가 우리를 가리키며 제거를 명했다. 그러자 무기 하나씩을 꼬나쥐고 있던 흰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휘두를 준비를 하며 알 수 없는 구호와 함께 달려오기 시작했다.

"백작님 뒤로, 이오나 보조 부탁드립니다."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무기를 쥐고 달려오자 알프는 빠르게 판단하고 앞으로 나섰다. 아마도 이 중에서 전투 능력이 제일 떨어질 내가 뒤로 제일 뒤로 섰고, 선두에 알프, 그리고 중위에 이오나가 위치하며 명백히 '적'이 된 이들과 싸움을 준비 하기 시작했다.

"마크노기아(맹목적인) 샤라툰(살의)!, 즈란데라놈(절대적인) 구스코(공격)!"

"고위 마술 같아요, 조심하세요!"

우리가 진형을 갖추는 동안 적들은 진형 따위는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알프의 실력과 이오나의 유용한 마술, 그리고 내가 보조한다면 적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달려드는 적들 사이에서도 그저 처음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던 뿔이 솟아난 자가 효과를 알 수 없는 마술을 시전했고, 이오나가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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