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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몰락한 귀족으로 살아남는 방법

247화 "태양의 부름" - 리뷰 만물상

by 리뷰 만물상 202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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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그라...”

“대책없이 일을 벌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바탈린.”

“수그라... 너...”

“왜, 많이 못나졌지...?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수그라...!”

‘와락’

고개를 파묻고 있던 수그라가 사람들을 제지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바탈린은 놀라움을 너머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예전과 같이 자신의 행동을 지적하는 자신의 정인의 말에도 바탈린은 여전히 말을 잇지 못했다. 바탈린이 말을 잇지 못한 것은 다름 아닌 현재 수그라 브루칸의 상태 때문이다.

수그라 브루칸, 지브리터의 대 부족장인 그녀의 얼굴은 이미 절반이 미라화가 진행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어져 있었다.

반쪽만 남긴 했지만 바탈린과 비슷한 이미 중년의 나이임에도 사막의 보석이라 칭하며 제국에 소문날 정도의 미인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듯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수그라 브루칸이 바탈린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대화를 주도적으로 몰고 갔던 것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바탈린이 볼까 싶어 짧게 대화를 마치기 위함이었던 듯 했다.

결국 바탈린은 끝내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달려들어 그의 넓은 품 안에 수그라를 안았다. 그렇게 드디어 이루어진 두 연인의 오랜 재회를 나는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 두분의 재회가 기쁜 건 마찬가지지만 한시가 급합니다.”

“앗?!”

전일 바탈린을 통해 이야기를 들은 나는 타리브의 태도와 수그라를 말할 때의 바탈린의 모습을 통해 아직 바탈린과 수그라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짐작 하고 있었다.

다만, 바탈린은 끝내 수그라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미안함 때문에 수그라 앞에 나서지 못했고, 수그라 또한 지브리터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감 때문에 정인을 따르지 못하는 입장이기에 바탈린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색한 관계가 되어 오랜 기간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만 하다 이제서야, 수그라 브루칸이 죽음을 앞둔 지금에서야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재회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마족 드라칸이 언제 본래의 힘을 되찾을지 모르기에, 수그라 브루칸의 병세가 언제 더 악화할지 모르기에 서둘러야 했다.

결국 나는 두 사람의 재회에 끼어들었고, 내 목소리를 들은 수그라 브루칸이 당혹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반쪽뿐이지만 얼굴을 붉히며 바탈린을 밀어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손님을 모셔놓고 추태를 보여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보시다시피 말씀하신 대로 저는 드리쿨 병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제가 드리쿨 병에 걸린 것과 제국이 상관이 있습니까? 혹시... 마족... 입니까?”

“맞습니다. 드리쿨 병의 원인은 마족입니다.”

“그럴 리가.. 수백년간 남부를 괴롭혀온 병의 원인이 마족이라니...”

“...그럼 그 마족을 죽이면 수그라의 상태는 돌아오는 것인가?”

수그라 브루칸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다시 원래의 위엄있는 대 부족장의 말투로 돌아와 나에게 사과를 건내었다. 그리고 바탈린은 이제 내 옆이 아닌 수그라 옆에 서 있었다.

확실히 수그라 브루칸의 현명함은 바탈린의 이야기 속과 다르지 않았다. 다시 원래의 위엄있는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는 내가 제국에서 왔다는 것 하나만으로 순식간에 원인과 이유까지 파악을 마쳤다.

나는 그런 그녀의 이야기에 부정하지 않고 솔직히 답해 주었다. 그리고 너무도 놀라운 사실에 수그라 브루칸은 다시금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대답한 것은 수그라 브루칸의 옆에 선 바탈린이었다.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만, 병의 원인인 마족을 죽인다면 더 이상 병의 진행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어서 그 마족을 죽이러 가지.”

“그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바탈린.”

“마족이 리라프 투르칸이기 때문인가?”

“그런 문제가 아니야 바탈린, 드리쿨 병을 퍼트린 이와 병의 근원인 마족이 다른 사람인 것이겠지.”

“바로 보셨습니다. 수그라 브루칸님.”

이 역시 나는 바탈린에게 내용을 감추지 않았다. 애당초 바탈린에게 숨길 생각은 없었다. 핑계가 될 수 있겠지만 여태껏 그가 묻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바탈린의 반응 때문에 더 나서서 말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바탈린이 오랜 첩자 생활을 하며 정세 파악이나 정보 취득에 두각을 드러내긴 하지만 애당초 머리가 빼어난 인물은 아니다.

거기다 더해 지금처럼 자신의 정인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다짜고짜 마족을 치겠다 나설 것을 알았기에 먼저 얘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제안을 내가 반대하고 나서자 여태와는 다르게 조금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나를 추궁하듯 말하는 바탈린을 막아 세운 것은 생각의 정리가 끝난 수그라 브루칸이었다.

내가 굳이 정보를 통제하고 감춘 적이 없었기에 알려고 한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다만 수그라는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지만 현명함을 바탕으로 스스로 알아내어 놀라울 뿐.

수그라가 가장 먼저 의아했던 것은 앞서 말했듯 갑작스러운 제국의 개입이었다. 이를 통해 브람스 내에 마족이 파고들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이 걸린 드리쿨 병이 마족에게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리고 든 생각은 다름 아닌 마족을 쫒던 제국인이 자신을 왜 찾아왔을까 였다.

물론, 상대해야 할 마족이 홀로 상대할 수준을 넘어선 마족이어서 협력을 위해 자신을 찾아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기엔 제국인의 행색이 이상했다.

여인인 자신도 간파하기 힘들 정도의 정교한 변장술, 이것은 마족의 정체가 보통의 지위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바탈린, 바탈린과 제국인이 함께라는 것은 마족이 바탈린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둘을 종합하면 바탈린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고위 귀족이란 것이었고 결국 답은 나와 있었다.

그렇게 마족이 연맹장 리라프 투르칸임을 확신하자 다음 생각들이 수그라 브루칸의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제국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누군가 제국에 마족이 있음을 귀띔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크리파에서 바탈린이 이끈 람비스 카라반은 타르킨토의 리만 브루칸을 따르는 집단이다.

그렇다면 제국에게 귀띔한 자가 리만 브루칸이란 것까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퍼즐 조각, 리만 브루칸과 접점이 있음에도 이 제국인은 왜 자신을 찾아왔는가.

답은 정해져 있었다. 리만 브루칸이 다른 속내를 지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늙은 여우 리만 브루칸이라면 충분히 그런 일을 벌이고도 남았다.

“어떠한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리만 브루칸은 드리쿨 병의 원인과 전염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그라 브루칸님을 비롯한 대 부족장들에게 병을 전염시키며 판을 짰습니다.”

“그 뒤에 제국에게 브람스 내부에 마족의 출현을 알렸겠지, 그 대상은 연맹장 리라프 투르칸일 테고. 리라프가 마족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거야 명분만 있다면 리라프 투르칸을 몰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을 테니까.”

“정확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습니다. 저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역시 수그라 브루칸은 알려진 대로 똑똑하고 현명했다. 단 몇 마디를 나누었을 뿐인데 전후 관계와 흘러가는 판세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아직 대화의 내용을 쫒지 못해 벙쪄있는 바탈린을 뒤로하고 다시금 자세를 다잡은 수그라 브루칸은 같은 질문이지만 다른 의미를 지닌, 내가 원하던 질문을 내게 건네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연맹장, 즉 마족을 먼저 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리만 브루칸이 원하는 대로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될 겁니다..”

“맞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타르킨토를 먼저 치는 것입니다.”

“리만 브루칸이, 타르킨토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닌 만큼 시간이 걸릴 테고 마족을 칠 시기를 놓치거나 나를 포함한 다른 대 부족장들이 버티지 못할 확률이 높을 겁니다.”

확실히 빼어난 이와 대화를 한다는 게 얼마나 편하고 좋은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설명 없이 한마디만 내뱉으면 수그라 브루칸은 내가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 명확히 꿰뚫어 보았다.

흘러가는 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듯해 보이는 바탈린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실제로 수그라 브루칸이 말한 것 처럼 두 가지 밖에 없는 선택지에서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쪽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잠시간 적막이 흘렀고 고민을 끝낸 수그라 브루칸이 입을 떼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선 제국인이기에 내가 생각하지 못한 아주 좋은 방법이 흘러나왔고 나와 바탈린은 그대로 수행하기로 했다.

“태양의 부름이라니, 나 참 솔데가 사라진 지금 그게 지브리터에 있을 줄이야.”

“그러게나 말이오, 람비스의 외손주가 루이마를 죽였단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오.”

“그나저나 솔데가 없는데 태양의 부름이라니...”

“맞소, 그건 솔데가 없다면 의미 없는 것 아니오?”

‘웅성웅성웅성’

나와 바탈린, 그리고 수그라 브루칸이 만난 그날 이후 지브리터는 바쁘게 움직였다. 지브리터의 여러 함선들이 여러 부족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브리터의 함선이 닿은 부족들에서도 함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목적지는 당연히 지브리터 였다. 

저택과 이어진 대장간의 망치질 소리 말고는 한적하기 짝이 없던 수그라 브루칸의 저택에는 난데없이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오죽하면 그 넓디넓었던 저택이 다소 좁아 보이기 까지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여드는 사람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지금도 선착장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지브리터에 정박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나마 땅이 넓고, 철기를 통한 무역이 발달된 지브리터기에 큰 선착장을 갖춰서 다행이지 지금의 규모라면 사크리파가 아니라면 감당키 어려웠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 많은 인원이 올 것을 알았기에 수그라도 사재까지 털어 모여드는 이들의 방문을 소홀하게 대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준비했다 한들 저택 안에 모든 인원들이 수용되지 않는 터라 저택 영내에 있는 공터에 호화스러운 막사를 세워 인원을 수용했다.

다른 영지라면 모를까 수그라 브루칸의 저택은 단단한 철책이 둘러싸여 있어 외부의 위협에도 방어가 되었기에 불만을 갖는 이는 적었다.

뭐, 설사 불만이라 하더라도 외부 막사로 안내되는 이들이 지브리터의 대 부족장인 수그라 브루칸에게 불만을 내뱉지는 못했겠지만 말이다.

‘웅성웅성웅성웅성’

“조용 해주시기 바랍니다.”

‘웅성웅성웅성웅성’

“조용!! 태양의 대변자 수그라 브루칸님 들어오십니다.”

‘척’

지브리터로의 행렬은 그렇게 며칠이 지속되었다. 도대체 언제 시작하는 건지 묻는 항의에도 수그라 브루칸은 답이 없었다.

솔직히 기간을 이렇게 길게 잡는 것은 지브리터 입장에서도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모여든 이들이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모두 지브리터에서 제공되기 때문이다.

또 그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오는 이들이 고위층인 만큼 다른 부분의 ‘접대’를 하기 위한 비용 또한 천문학적으로 소진되고 있었다. 

그런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수그라 브루칸은 최대한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첫 방문자가 지브리터의 땅을 밟은 지 한 달 반 만에 수그라 브루칸의 공표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공표한 일정대로 수그라 브루칸의 저택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저택 안으로 들어오는 게 허락된 이들은 모여든 이들에 비한다면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저택 내부는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원래 저택 로비로 사용되는 곳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원형 철제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철제 테이블은 따로 상석의 구분이 없는 다섯개의 의자가 놓여있었다. 당연히 대 부족장들을 위한 자리였다. 그리고 테이블에서 벗어난 한쪽 벽면에 일렬로 의자들이 놓여 나머지 인원들이 앉을 수 있게끔 되어있었다.

잠시 뒤 들어올 만한 인물들은 거의 다 들어왔다 생각 될 때 쯤, 저택의 관리인 비지스 타르만이 장내를 조용히 시켰고 드디어 주최자인 수그라 브루칸이 들어섰다.

‘또각, 또각, 또각’

“올 사람들은 다 온 것 같으니 시작하시지요.”

“알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비지스 타르만의 외침과 함께 저택의 안쪽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며 수그라 브루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내는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저택 안에는 수그라 브루칸의 걸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자신의 자리에 선 수그라는 자리에 앉지 않고 사람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우락부락하게 생긴 한 사내가 예의를 차리며 수그라에게 시작을 종용했고 그녀는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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