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작 소설/몰락한 귀족으로 살아남는 방법

248화 "연맹 회의(1)" - 리뷰 만물상

by 리뷰 만물상 2024. 2. 26.
반응형

수그라가 바로 자리에 앉지 않은 이유는 비어있는 좌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테이블의 좌석에는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바로, 연맹장 리라프 투르칸의 자리였다. 그리고 테이블 밖의 좌석에도 투르칸을 따르는 이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리라프 투르칸이 마족이라는 것을 내게 전해 들은 수그라는 투르칸이 참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방금의 행동은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모두 태양의 부름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태양의 부름을 발호한 이유는 브람스에 중대한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웅성웅성웅성’

“조용히 하십시오!, 라하므스의 그리세 브루칸님에게 전권을 위임받아 온 두라프 타르만입니다.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지요 두라프 타르만님.”

“태양의 부름이 브람스에 중대한 위험이 처했을 때 사용된다는 건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

“듣고 있습니다.”

“저희가 궁금한 것은 과연 태양의 부름이 브루칸님에게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태양의 부름, 이것은 고대 브람스에서부터 구전으로만 전해져 오는 내용이었다. 솔데가 없는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본 적은 없지만 실재함은 알고 있는 독특한 제도이자 물건, 아니 그 무언가였다.

뉴란드 대륙에는 유독 태양을 숭상하는 단체나 집단이 많은데, 이것은 신이 없다는 대륙의 기조에 따라 자연물을 숭상하기 때문이다.

우선 제국의 황실의 문양이 증명하듯 제국이 그러했다. 제국이 상징하는 태양은 황제가 태양처럼 모두를 밝게 비춘다는 의미를 지녔다.

그리고 브람스에서의 솔데가 그러했다. 태양을 받드는 자라는 의미의 솔데는 샤머니즘의 일종으로 사막에서 가장 무서운 태양을 받들어 모신다는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태양의 부름, 그것은 고대 브람스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솔데만의 권리이자 권한이었다.

앞서 말했듯 연맹제인 브람스는 솔데라 하더라도 독선적으로 대 부족들을 다룰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솔데가 부족들을 소집한다고 하더라도 소집에 응할지 말지는 부족장의 자유라는 것이다.

그것이 대 부족이든, 작은 부족이든 말이다. 그러나 이 태양의 부름만은 달랐다. 태양의 부름은 브람스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만 내세울 수 있는 솔데의 권리로 태양의 부름을 들은 모든 부족장은 부름에 응해야 한다는 강제성을 띤다.

그런 대단한 권리인 만큼 여기 모인 이들은 궁금한 것이다. 과연 수그라 브루칸에게 솔데의 권리가 있는지가 말이다.

그런 만큼 표면적으로 보자면 단순한 궁금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두라프 타르만의 질문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는 질문이다.

정중한척하지만 만약 수그라 브루칸에게 태양의 부름이 없거나 행할 권리가 없는 경우 책임을 물어 여러 가지를 얻어내기 위함이었다.

“네, 태양의 부름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태양의 부름은 물건이 아닙니다.”

“그럼 솔데의 정당한 후계가 나타난 겁니까?”

“아닙니다.”

“그럼 대체 수그라 브루칸 께서 무슨 권리로 이 많은 부족장들을 소집하셨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라면 라하므스의 그리세 브루칸님에게 직접 위임받은 권한으로 수그라 브루칸님은 물론 지브리터에 그 책임을 묻겠습니다.”

태양의 부름이 있냐는 두라프 타르만의 질문에 수그라는 막힘 없이 가지고 있다 대답했다. 그 뒤에 이어진 태양의 부름을 증명하라는 질문들에도 말이다.

다만, 막힘없는 대답과는 달리 수그라는 이들 앞에서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했다. 아니, 제시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솔직히 수그라 브루칸쯤 되는 위치라면 분가이긴 해도 람비스의 피를 이은 바탈린을 내세워 솔데의 후예라 우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몇 가지 제한에 부딪히는데 첫 번째는 바탈린을 내세운다면 이 회담의 주체를 자신이 아닌 바탈린이 가져가게 된다.

두 번째 문제는 첫 번째 문제와 연관이 깊다. 공식적으로 바탈린은 지브리터의 전 브루칸, 루이마 브루칸의 암살범으로 수배 중인 인물이다.

솔데의 후예임을 앞세워 루이마 브루칸 살해를 정당한 일이었다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수그라 브루칸의 입지가 좁아진다. 이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수그라 브루칸의 입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바로 바탈린의 거부였다. 일전에 들었듯 바탈린은 자신을 정당한 후계라 생각하지 않았다.

바탈린의 고집이자 생각은 람비스의 정당한 후계는 홀연히 사라진 자신의 사촌형이었고, 이렇게 자신이 그 자리를 빼앗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태양의 부름은 저 뿐 아니라 여러분들에게도 있습니다.”

“??”

“태양의 부름이란 위기에 브람스가 하나가 되기 위한 수단일 뿐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 무슨!!, 나는, 라하므스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옳소!, 타르킨토도 인정 못합니다. 솔데의 권리를 욕보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머비스라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웅성, 웅성, 웅성, 웅성’

수그라는 앉은 자리에서 말없이 주위를 잠시 둘러본 뒤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는 진부한 거짓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의 거짓말과는 다르게 사실 태양의 부름은 실존한다. 그리고 태양의 부름은 단순한 권리가 아닌 솔데의 정당한 후계만이 사용할 수 있는 오파츠다.

파티흐 람비스가 가르친 세 사람, 바탈린, 타리브, 수그라 세 사람 모두 지브리터에 있고 람비스 카라반의 배 누군가의 쉼터의 마지막 행선지 또한 지브리터였던 만큼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앞서 말했듯 어차피 이들의 목적은 태양의 부름이 궁금한 것이 아닌 수그라 브루칸을, 지브리터를 헐뜯고 깎아내려 자신들이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발언 이후 당연히 반발들이 터져 나왔다. 대화를 주도하고 나섰던 라하므스의 대리인으로 나왔던 두라프를 시작으로 조용했던 장내는 다시 한번 소란으로 가득 차 버렸다.

“여기...”

‘웅성, 웅성, 웅성’

“조용!!! 태양의 대변자 수그라 브루칸님이 말씀하시는 중입니다.”

“여기, 태양의 부름을 목격하신 분 있습니까?”

“...”

“태양의 부름에 대한 기록을 보신 분 있습니까?”

“...”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였다고 하나, 존재를 부...”

“직접 목도한 적도, 기록조차도 본적 없는 자들이 어찌 대 부족장인 내 이야기에 반론을 제기하느냐!”

소란을 지켜보던 수그라는 조용히 입을 떼었다. 하지만, 한번 번져버린 소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고, 지켜보던 비지스 타르만의 고함으로 간신히 다시 소란을 잠재웠다.

그리고 다시 분위기를, 기세를 휘어잡은 수그라 브루칸의 말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어조로 이어졌다. 처음은 여태까지와 같은 부름에 응한 이들을 존중한다는 존대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지는 말 속에 계속해서 대화를 주도하던 두라프 타르만이 또다시 반론을 제기하자 갑자기 분위기가 일변한 그녀는 모두를 향해 고함치며 나무랐다.

그녀는 지금까지 굉장히 참고 있었다. 바탈린 앞에서야 한낱 정인과 사랑에 빠진 여인이겠지만 현실의 수그라 바탈린은 중년에 접어든 산전수전 다 겪은 지브리터를 다스리는 대 부족장 수그라 브루칸이다.

사실 지금 이 회담장의 테이블에는 수그라 브루칸을 제외하면 브루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사크리파의 연맹장은 불참이고, 머비스라나 라하므스, 타르킨토에서도 대리인을 내세웠다.

원래 태양의 부름은 일방적인 관계의 소집이기에 부름을 받은 부족장이 직접 참석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 만큼 대리인을 내세운 이들이 수그라 브루칸을 압박하며 솔데의 권위와 권리를 부르짖던 이들이 논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수그라는 참았다. 애초에 이 자리는 이들과 싸우기 위한 자리가 아닌 브람스의 협력을 위한 자리니까 말이다.

겉보기에는 수그라 브루칸을 무시해 전통을 지키지 않은 것 처럼 보이지만 왜 다른 부족에서 대리인을 내세웠는지도 알기에 참았다.

그리고 그녀가 참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금의 한 방을 노리기 위해서였다. 앞서 말했듯 태양의 부름은 부족장들 사이에 대대로 내려온 이야기로 실제 행해진 기록조차 거의 없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태양의 부름에 관한 기록 또한 연맹장인 리라프 투르칸도, 다른 브루칸들도 기록을 본 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수그라 브루칸이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애초에 이번 태양의 부름은 오로지 자신의 말 한마디로 이뤄지는 일이기에 타 부족의 반발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직접 목도한 이도, 기록을 본 이도 없는 이 자리에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이들이 그녀의 말에 반론을 제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까지 모두 수그라 브루칸이 계획했던 일이었다.

사실 수그라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회담의 목적에 있었다. 이번 회담의 목적은 전쟁이나 다른 것이 아닌 생존을 위한 마족의 토벌이다.

자신을 비롯한 다른 브루칸들 또한 드리쿨 병에 걸린 지금 기세만 잘 잡는다면 이번 태양의 부름이 진짜든 가짜든 간에 향후 벌어질 일들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태양의 대변자이자 지브리터의 대 부족장 수그라 브루칸이다. 아직도 내 권위에 도전하는이가 있는가!”

“말씀하십시오 태양의 대변자시여...”

“지금 브람스에는 큰 위기가 닥쳐왔다. 오래전 사라진 줄 알았던 마족이, 수천년전 수백년 동안 브람스를 비롯한 대륙 전체를 괴롭혔던 마족이 브람스에 들어왔다.”

“마족은...”

“내 얘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 다들 그러했듯 제국이 마족을 언급하며 벌벌 떨 때 나 또한 그들을 겁쟁이라 비웃었다. 허나, 마족은 실재한다.”

“즈... 증거가 있겠습니까...?”

기세가 변한 수그라의 언행은 거침이 없었다. 테이블에 앉지 못한 중소 부족장들은 물론 테이블에 앉은 대 부족장의 대리인으로 온 이들까지 모두에게 자연스레 하대하며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각인시켰다.

결국 처음부터 대화를 주도하던 두라프 타르만 또한 기세에 눌려버렸고, 이제 이곳에서 수그라 브루칸이 대양의 대변자임을 의심하는 이는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휘어잡은 수그라는 둘러 말하지 않고 바로 태양의 부름을 행한 이유를 꺼내었다. 이유는 당연히 마족 때문이었다.

그녀가 태양의 대변자임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브람스에서 마족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에 다시금 그녀에게 증거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물론, 기세에 한껏 눌려 아까처럼 당당히 나서지는 못했다.

“이 자리에 드리쿨 병에 대해 아는 자가 있는가?”

“!!”

“드리쿨 병은 끝없는 갈증을 유발하고 결국 산채로 미라화되며 죽어가는 병이다.”

“...그것이라면 브람스인치고 모르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드리쿨 병은 브람스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드리쿨 병과 마족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맞다. 수백년간 브람스인을 괴롭혔고, 그리고 지금 조차도 끔찍한 기억만을 남긴 것이 바로 드리쿨 병이다. 그리고 이 드리쿨 병이 바로 브람스에 숨어든 마족의 이능이다.”

“...그것 또한 납득할 만한 증거가...”

“증거, 그래 증거 좋지 첫 번째 증거를 보여주겠다.”

‘스윽’

“!!!!!”

마족의 증거에 대해 수그라가 처음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드리쿨 병에 대해서였다. 수그라가 모두들 아는 드리쿨 병에 대해 언급하자 다시금 두라프 타르만이 고개를 들며 수그라에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수그라는 이번에는 두라프 타르만의 말에 화를 내지 않고 차분히 설명을 이었다. 물론 기세를 얻은 두라프 타르만은 그러한 수그라의 말에 또 증거를 내밀라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수그라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실크를 걷어 올려 모두에게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당연히 장내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놀란 것은 이들 뿐 아니라 뒤쪽에 서 있던 나와 바탈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태양의 부름 이전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수그라는 나와 바탈린에게 모든 계획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수그라는 그저 자신이 생각해낸 큰 그림만을 말해주었고, 나는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해 수그라의 계획에 동의했다.

다만, 바탈린은 달랐다. 브람스인이 아닌 나는 태양의 부름이 갖는 무게감이나 브람스 내부적인 분위기에 대해 잘 몰랐지만 바탈린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바탈린도 태양의 부름에 대해서는 잘은 몰랐다. 다만, 파티흐 람비스가 바탈린에게 말하길 ‘솔데를 계승한 정당한 후계만이 브람스를 하나로 만들 권리를 가진다.’ 라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기에 모여든 이들을 속이기 쉽지 않을 거라 걱정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설사 태양의 부름에 응한 모든 사람들을 속인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수그라 브루칸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