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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몰락한 귀족으로 살아남는 방법

249화 "연맹 회의(2)" - 리뷰 만물상

by 리뷰 만물상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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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이야기 한 것처럼 대륙에서 흔히 말하기를 남부 브람스는 완벽한 남녀의 평등을 이뤘다고 하지만 이것 또한 사실 말처럼 완벽하지는 않다.

일례로 지금 지브리터에 모여든 부족장들의 성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물론 여자인 부족장들도 왕왕 보이지만 대부분의 부족장의 성별은 남자이다.

브람스에 남자가 더 많이 태어나는가? 그것은 또 아니다. 사실 정확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없지만 추운 대륙의 북으로 갈수록 남아가 더 많이 태어나고 뜨거운 대륙 남쪽으로 갈수록 여아가 더 많이 태어난다는 낭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또 마냥 낭설은 아닌 것이 실제로도 제국 북부 프로문트 영지에는 남아가, 브람스에는 여아가 더 많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파티흐 람비스 또한 아들 없이 네명의 딸만 두었었다.

그런 만큼 여자가 많이 태어나는 브람스에서 후계를 잇는 사람은 여인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부족장이 남자인 이유는 바로 많은 부족들이 남자 부족장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브람스가 대륙의 다른 국가들처럼 남성의 권위가 대단하기보다는 오래전부터 이어오던 브람스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단일국이 아닌 연맹제인 브람스는 그만큼 타국에 비해서는 타국의 영지전 같은 부족 간의 분쟁이 잦은 편인데 이 부족전에서 부족의 대표인 부족장은 항상 제일 앞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앞에서 이끄는 이가 강할수록 부족원들의 사기도 높아지고, 부족전에서 승리학 확률도 높기에 남자 부족장을 선호하는 문화가 자연스레 정착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족장들이 쓰는 방법이 가문의 첫째가 장녀면 데릴사위를 들이거나, 아니면 다른 가문과 결혼을 시켜 가문의 일원에서 빼버리는 방법을 많이 쓰는 편이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그런 만큼 브람스에서 여인이 부족장의 지위를 잇는 일은 드문 편이고 또한 부족전에 나서지 않거나 무력이 약한 여인 부족장을 조금 무시하는 기조가 깔려있다.

바탈린이 걱정한 것도 이 부분이었다. 자신의 정인인 수그라가 대단한 여인이자 대 부족장인 것은 맞지만, 그것을 다른 부족장들이 인정하는 것은 아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수그라는 자신이 알아서 잘할 테니 이 부분은 자신을 믿고 맡겨달라 말했고, 그녀의 눈에 비친 진심을 읽은 바탈린은 더 이상 반대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지금 회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전부 계획되지 않은 수그라 브루칸이 홀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녀가 대단한 인물임은 알았지만 설사 이렇게 많은 이들 앞에서 자신이 드리쿨 병에 걸린 사실을 공개할 줄은 몰랐다. 

이것 또한 여러 번 말했듯 브람스에서 드리쿨 병에 대한 인식은 단순한 질병이 아닌 오랜 기간 뼈에 사무친 공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 뿐이 아닐 것이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다른 대 부족장들 또한 같은 상황일테지.”

“...브루칸님의 상태는 안타까운 일이나, 드리쿨 병과 마족과의 연결점이 증명된 것은 아닙니다...”

“병에 걸림을 알고 따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옛 기록에서 드리쿨 병의 기원과 마족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었지.”

“...기록을 보여주실...”

“타르킨토는 내 모습을 보고도 아직도 내 말을 의심하는가?”

“...아닙니다. 다만 부족으로 돌아가 대 부족장님께 상황을 설명드려야 하기에...”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유적의 붕괴와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과거에, 그리고 다시금 남부를 공포로 뒤덮을 끔찍한 질병을 두고 볼 수 없던 나는 결국 내 결심을 꺾고 제국의 손을 빌렸다.”

“제국에 말입니까...?”

“그렇다. 제국은 이미 마족의 출현을 공표했고 마족에 대비하기 위해 인간이 결집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국은 나의 요청에 따라 흔쾌히 사람을 보내주었지.”

“안녕하십니까. 하이든 제국의 백작이자 비마군의 수장 데일 볼든 백작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충격에 빠진 와중에도 수그라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넌지시 다른 부족들의 상태 또한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단 것을 시사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질문은 여태까지와 달리 라하므스가 아닌 타르킨토 였다. 타르킨토의 리만 브루칸 또한 직접 나서지 않고 이 자리에 대리인을 보내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대 부족장들 모두가 드리쿨 병에 걸린 것으로 알려진 이때 자신만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의심 사기 딱 좋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것은 그의 악수가 되었다. 타르킨토에서 온 대리인은 타르만도 아닌 라흐만이 참석했고, 그는 리만 브루칸의 계획을 거의 모르는 듯 보였다.

그런 그는 그저 리만 브루칸이 지시한 대로 태양의 부름을 행한 수그라 브루칸의 말에 한 번씩 반론을 제기하라는 임무를 수행할 뿐인 것 같아 보였다.

결국 큰 맘먹고 한번 반론을 제기해 보았지만, 그는 수그라 브루칸의 기세에 눌려 단박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타르만도 아닌 라흐만이 브루칸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일 자체가 그에게는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나아가 목숨을 건 도박이었을 것이다.

리만 브루칸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지금 상황에 타르킨토의 대리인이 끼어드는 덕분에 다른 부족장들은 특히 기회를 노리던 라하므스의 대리인이 끼어들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수그라는 손쉽게 부족장들의 입을 막으며 드디어 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는 드디어 앞에 나서 자신을 소개했다.

‘척’

“???”

“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자연스레 소개를 마친 나는 테이블에 놓인 다섯 좌석 중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테이블에 앉은 이들 뿐 아니라 모든 부족장들이 내 행동을 보고 당황함이 보여졌다.

이들의 놀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선 나는 이제 더 이상 여장의 상태가 아닌 원래 데일 볼든 백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바탈린은 내 몸에 붙인 보형물을 제거하기 위해 특수한 접착제를 녹이는 약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지금은 내 외적인 모습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놀란 것은 지금 이 자리가 단순한 회담이 아닌 브람스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태양의 부름이라는 점이다.

솔데가 없다는 게 공연한 사실인 현재 수 많은 부족장이 태양의 부름에 응한 것은 단순히 지브리터에 트집을 잡는 것을 넘어 이들이 이 태양의 부름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신성한 회담에 외지인인 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으니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다 내 작위는 백작, 브람스로 따지면 타르만에 불과한 것도 한몫했다.

“태양의 대변자시어, 아니 수그라 브루칸님 지금의 상황은 경우가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듯 싶습니다.”

“맞습니다. 타르만이라니요!”

“저희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신성한 태양의 부름에 제국인 이라니요!”

‘웅성, 웅성, 웅성, 웅성’

나의 등장과 파격적인 행동으로 또 한 번 장내는 소란을 맞았다. 엄청난 소란 속에, 하물며 비지스 타르만 조차도 지금의 상황에 놀란 와중에 무덤덤한 사람은 셋이 있었다.

애초에 테이블의 다섯 좌석에 리라프 투르칸의 자리는 없었다. 마족임이 확실한 그의 자리를 만들어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비어있던 자리는 나를 위해 준비된 자리로 극적인 순간에 극적으로 등장해 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애초에 다 계획된 연출이었다. 그런 만큼 이 판을 짠 수그라 브루칸과 나, 바탈린은 당황하지 않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이 자리에 브루칸은 나뿐이다. 그대들은 되고 제국인은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라.”

“수그라 브루칸님 감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듣고 있다 말하라.”

“저희 또한 자격이 없음은 브루칸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브루칸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은 대리인입니다. 저 제국인과 같은 선상에 놓을 일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다른 부족장들도 같은 생각인가?”

“...”

“그대들의 말에는 두 가지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 첫째, 데일 볼든 백작은 제국 비마군의 수장으로 마족에 관련한 사항에 한해서는 후작의 권위를 행사함을 제국의 황제가 승인했다.”

“하지만, 그것은 제국의 황제이지 브람스에서는 아닙니다.”

“끝까지 듣거라. 다시 한번 내 말을 자른다면 네가 아무리 라하므스의 대리인이라도 네 혀를 자를 것이다.”

“...듣겠습니다.”

“두 번째, 너희들은 지금 너희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어디라 생각하느냐? 이곳은 나의 땅, 철의 지브리터다. 이곳에선 내가 기준이고 내 말이 법이다. 그런 내가 초대한 제국의 인사를 무시할 셈인 것이냐?”

잠시간의 소란을 지켜보던 수그라는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며 장내를 순식간에 조용히 시켰다. 이미 그녀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만큼 아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수그라는 이들의 주장을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로 이들의 이야기를 일축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수그라의 말에 다시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고 이 기회를 놓칠 두라프 타르만이 아니었다.

지금이 끼어들 타이밍을 명확히 한 두라프 타르만은 아까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는 듯 이번엔 최대한 저자세를 취하며 먼저 수그라에게 발언의 기회를 요청했다.

그의 각오가 보이듯 이번에 이어진 그의 논리는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명확했다. 오죽하면 이야기를 듣던 나조차 살짝 고개를 끄덕일뻔했다.

애초에 그에게 발언의 기회를 준 것 또한 수그라의 계획 중 하나였다. 언젠가 말한 적 있듯이 사람을 다루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보통 두 가지의 방법이 잘 먹히는 법이다.

첫 번째, 가진바 영향력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다. 과거 내 상황과는 다르게 수그라 브루칸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지만 이 방법은 지금 사용하면 안 되었다. 아니,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 첫 번째 방법은 상대를 굴복시킬 때 사용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수그라가 회담의 분위기를 휘어잡아 이끌고 있지만 어쨌든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크든 작든 부족을 대표하는 부족장들이거나 그의 대리인들이다.

그런 이들이 쉽게 굴복할 리도 없겠지만 향후 마족 드라칸과 대적하기 위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이들의 굴복이 아닌 협력이라는 점이다.

그럴 때 사용되는 게 바로 두 번째 방법이다. 타인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과거 라탄 평원에서 용병들과 작전회의 할 때의 나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기는 하다.

그때 나는 분위기를 주도하기 위해 가장 다루기 쉽고 만만한 이를 자극해 분위기를 주도했지만 지금 여기는 이미 수그라가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다. 그런 만큼 지금 수그라에게 필요한 것은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수그라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납득할 ‘명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제외한 이곳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한 이의 주장을 꺾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수그라의 계획에 두라프 타르만은 걸려들었다.

발언권을 얻자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수그라를 마주 보며 ‘어디 한번 반박해보시지?’ 라는 태도로 말을 잇는 두라프 타르만을 보며 수그라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지만, 그녀는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수그라는 두라프 타르만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곳의 다른 이들 또한 같은 생각인지 물었다. 침묵은 곧 긍정, 다른 이들도 두라프의 말에 입을 모았다.

역시 이 또한 계획대로였다. 나는 수그라가 생각했던 대로 일이 풀려나가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자 속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흡사 여자 듀발 후작을 보는듯한 그녀의 수완은 참으로 대단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의견이 두라프 타르만에게 모인 것을 확인한 수그라는 그제서야 나서기 시작했다. 수그라의 주장은 어떻게 본다면 다소 억지스럽다 생각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륙의 다른 국가의 이야기였고 이곳 브람스에서만큼은 수그라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러 번 말했듯 브람스는 연맹제 국가로 지금 태양의 부름과 같이 브람스의 뜻을 모아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부족의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따지고 들 수 없다.

수그라는 그 점을 이용했다. 애초에 태양의 부름을 이용한 것 또한 사람들을 부족장들을 자신의 땅 자신이 법으로 존재할 수 있는 지브리터 위에 모으기 위함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태양의 부름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을 모을 방법은 더러 있다. 연맹 총회를 요청할 수도 있고, 다른 브루칸과 손을 잡고 공동 선언을 할 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이야 지금 설명할 필요는 없고 두 방법 모두 다른 부족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방법들이다. 다만 두 방법 모두 지브리터에서 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어쨌든 현실로 돌아오자면 수그라는 제국에서의, 비마군의 수장으로서의 내 입지를 설명함과 동시에 자신의 땅위에서의 내 권위를 브루칸과 동격으로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발언에 다른 부족장들은 물론, 매번 빈틈을 노리던 두라프 타르만 또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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